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는 4일 2000년 6월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의 당좌대출과 관련, "당시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으로부터 청와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현 민주당 최고위원)이 대출을 지시한 것으로 들었다"며 청와대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관련기사 3·4면그는 또 "4,000억원의 당좌대출은 통상적으론 있을 수 없는 대출"이라며 "남한의 자금이 북쪽의 무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진실을 알리게 됐다"고 말해 대북지원 의혹을 강력 제기했다.
엄 전 총재는 이날 산업은행에 대한 국회 재경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 "2000년 8월 취임 직후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으로부터 '우리가 쓴 돈이 아니므로 정부에서 대신 갚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직전 총재였던 이근영 금감위원장을 찾아가 직접 의논했다"며 "이 위원장도 '상부의 강력한 지시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광옥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전화로 대출지시를 한 것으로 (이근영 위원장으로부터) 들었다"며 "필요하다면 이근영 위원장과의 대질신문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엄 전 총재는 그러나 현대상선 대출의 대북지원 여부에 대해서는 "들은적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취임 인사차 엄 전 총재가 왔었지만 '상부지시'에 대해 얘기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한광옥 실장과 통화를 했더라도 나와 한 실장밖에 모르는 일일 텐데 엄 전 총재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엄 전 총재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또 "현대상선의 산업은행 대출금 4,000억원 등은 현대의 다른 계열사 정리 및 구조조정과 관련한 출자 등과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광옥 최고위원도 엄 전 총재의 주장에 대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력 부인했다. 한 최고위원은 "엄씨가 왜 두 번씩이나 내 이름을 거명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나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해준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거듭 부인했다.
이날 재경위 국감에서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현대상선이 2000년 4월 해외지점을 통해 3,000만달러를 인출했으며 이는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착수금으로 북한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정건용(鄭健溶) 산업은행 총재는 업무보고를 통해 "현대상선 당좌대월 4,000억원은 승인된 날에 자기앞수표 7장으로 3개 점포에서 각각 인출된 뒤 이튿날 다시 64장으로 나눠졌다가 8일부터 16일 사이에 모두 교환 회부됐다"고 설명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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