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것을 먹다 보면 이가 아프다. 그래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할 때가 있다. 혀에 닿는 달착지근한 맛이 이를 시큰하게 하는 고통과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어느 순간 뼈를 상하게 하는 감각에 절어버린다. 박청호(35·사진)씨가 세번째 소설집 '질병과 사랑'(문학과지성사 발행)을 펴냈다. 그는 마음을 상하게 하는 달착지근한 감각에 기대어 글을 쓰는 작가다. 독자는 마음이 시큰해지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다가 곧 그 아픈 감정에 안락하게 빠져든다. 아프고 편안하다.단편 '몸의 사랑'에서 남자는 옛날 애인을 촉각으로 기억한다. 여자를 안았을 때의 감촉, 피부의 놀라운 탄력, 빨아당길 것 같은 접촉력 같은 것들. "몸 때문에 사랑했다. 오로지 몸이 사랑했다!" 그래서 그 관계는 위험하다. 오로지 감각만이 기억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중국 여자에 관한 흐리고 느린 필름'은 시각에 관한 것이다. 한 남자의 일상에 중국 여자아이가 뛰어들었다. 남자와 여자아이가 나눈 몇 번의 만남들이 앨범을 빠르게 넘겨보는 것처럼 지나간다. 몸을 씻겨주고 함께 쌀밥을 먹고 사진을 찍는다. 헤어진 뒤 남는 것은 부어 있는 뺨과 눈가의 주름과 알통이 박힌 종아리 같은 눈의 기억 뿐이다. 단락마다 시점을 교차한 '우렁신랑'도 그렇다. '조'와 '수', '리'와 '장'이 맺는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은 순간 순간 바뀌는 장면 묘사를 통해서다. 이런 작업을 하는 박씨를 두고 평론가 백지연씨는 "이미지를 모으는 컬렉터"라고 표현한다.
표제작 '질병과 사랑'은 수많은 목소리들을 수집한 것이다. 뱃속의 아이를 지워준 의사와 결혼한 여자의 목소리, 그 여자와 10년째 사귀어온 정부(情夫)의 목소리, 병을 앓는 시어머니와 간호하는 시누이의 목소리. 청각으로 짠 글쓰기는 아픈 질병과 달콤한 사랑의 경계를 흐려놓는다. "자신의 방에 숨어서 자기가 모은 것들을 들여다보며 사랑을 연습하는" 사람들의 소란스런 목소리는 아프고 달콤하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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