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권이 부실기업을 동원해 남북정상회담을 돈으로 샀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의혹들이 터져 나오면서 이른바 '대북 뒷거래'의혹은 정권 최대의 스캔들로 비화할 조짐이다.4일 산업은행에 대한 국회 재경위 국감에서도 '폭로전'이 난무했다. "현대상선이 2000년 4월 해외지점을 통해 인출한 3,000만달러가 남북정상회담 착수금으로 북한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4,000억원을 64장의 자기앞수표로 바꿔 (국정원 요원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한꺼번에 가져갔다"(한나라당 임태희 의원)….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온 국민이 의혹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 하는데도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없이 의혹만 확대재생산되고 있으니 말이다. 폭로와 의혹의 '거품'이 들끓고 있지만 기실 '물증'이나 '증인'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특혜대출을 해준 정황이 역력하고, 폭로의 내용이 점점 구체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대가 빌린 자금이 북한으로 건너갔다는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주장을 입증할만한 물증도 없이 '설'이 '설'을 낳는 악순환만 되풀이 되는 형국이다.
의혹 해소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들이 나타나 속 시원히 증언하면 될 텐데 그 또한 여의치 않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나 다름없는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한차례 해명도 없이 행방을 감추었다. 지난달 25일 국감 증언 후 잠적했던 엄낙용 전 산은 총재는 4일 국감장에 나타나 물증제시도 없이 "서해 교전 때 우리 함정을 공격한 적의 함정이 새로운 무기와 화력으로 보강된 함정이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남측에서 지원한 자금에 의해서 우리 병사들이 공격당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는 증언으로 의혹설에 기름만 끼얹었다. 진실규명은 의외로 간단하다. 산업은행으로 돌아온 수표 64장의 궤적을 일일이 추적하면 된다. 필요 없는 의혹의 양산과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당국이 나서야 한다.
변형섭 경제부 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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