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글을 세차게 쏟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갈되지 않겠느냐고 소설가 이윤기(55)씨에게 질문했던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서양 신화를 내 방식으로 해석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25년 전에 기획한 책"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의 글쓰기는 깊숙한 뿌리를 갖고 있다는 의미였다.이윤기씨는 산문집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시공사 발행)에서 흙을 헤집고 자신의 뿌리를 좀더 깊이 보여준다.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을 달달 외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에게 공부는 너무 쉬웠다. 중학교에선 '톰 소여의 모험' '오 헨리 단편집'을 영어로 읽었으며, 일본어를 배워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시오자이(潮騷)'를 읽었다. 그때 읽었던 것이 지금도 남아 있느냐는 물음에 이씨는 이렇게 말한다. "세월이 좀 흐르는 바람에 온전한 것은 아니지만 글장수 밑천될 만큼은 넉넉하다." 막강한 실력을 갖춘 인문학자 겸 탐미주의 계열 시인 겸 육군 대위가 되고 싶었던 소년의 꿈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러나 튼튼한 뿌리를 가진 소설가가 되었고 번역가가 되었다.
신문과 잡지에 쓴 글을 일러 '잡문'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씨는 '산문'이라고 고쳐 말한다. 있는 힘을 다해 쓴 것을 잡다한 글로 몰아버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씨는 개인사와 사는 곳 이야기, 먹거리에 관한 얘기, 우리 사회 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산문집 한 권에 담았다. 자신의 개인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쓴 1부를 두고 "진실을 빙자한 노출이 심하다. 가까운 사람들은 그렇게 써놓고 뒷감당을 어떻게 어찌 하겠느냐고 걱정한다"는 말을 달았다. 진실의 뒷감당이 버거운 것이 살아온 이야기 뿐일까. 자기 얘기를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모든 산문이 그럴 것이다. 감정이 얼마나 '감정적'인지를 문득 알게 되는 짧은 생각. 미워하는 사람들이 금방 무너질 것 같았는데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참 이상도 하지, 싶다가 호오(好惡)의 감정이란 것이 바르게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그른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채소를 잡초로 여기고 맹렬한 적의를 품는 일이 왜 없겠는가? 어떤 밭에서는 나도 필시 잡초일 터이다."
'되어지다'라는, 맞춤법에 어긋난 단어가 쓰이는 걸 보면 견딜 수가 없다는 그이다. 그만큼 말 쓰임새에 엄격하다. TV에서 '무데뽀'라는 말이 쓰이는 것에 대해 '데뽀(鐵砲)'는 '화약을 장전해 탄환을 발사하는 병기'를 가리키는 일본어라면서 '막무가내'로 쓰는 게 좋겠다고 권한다. 한 리포터는 "어머, 사람들이 '나래비'로 서 있네요"라고 말한다. '나라비'는 늘어선 줄을 뜻하는 일본어란다. 우리말 '나란히'와 비슷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베스트셀러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 유명해진 그에게 한 기자가 질문했단다. "선생님은 어떤 괴물을 죽이셨나요?"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은 괴물을 한두 마리씩 죽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웅이 아닌데도 이씨가 죽여버리려고 기를 쓰고 싸워온 동물이 있었다. '심심풀이'라는 괴물과 '얼렁뚱땅'이라는 괴물. 심심할 때 바둑 한 판 두자고, 고스톱 한판 치자고 꼬드기는 괴물과 얼렁뚱땅 해치우고 술이나 먹자고, 인생이 별거냐고 속삭이는 괴물. 바로 어제를 돌아보면서 이씨는 묻는다. 어제 죽인 것은 무엇일까. '심심풀이'도 '얼렁뚱땅'도 아닌 '시간'이라면 "유죄!"라고 이씨는 스스로에게 선고한다. 그것은 이씨의 산문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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