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까지 미적대기만 할 것인가. 현대상선의 4,000억원대 대북지원설의 처리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에 정부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의혹이 제기된 지 일주일이 넘도록 속시원히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이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현대상선과 대출은행인 산업은행에 대한 자금 추적이 의혹을 푸는 열쇠임은 삼척동자도 안다.그런데도 정부는 가장 쉬운 길인 계좌추적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출금이 현대상선의 현대계열사 지원에 사용된 것으로 현대의 내부 문제로 파악하려는 시각마저 있다. 그러나 계좌추적을 통해 대출금의 흐름이 객관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결론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당시 현대상선의 자금사용 내역만을 근거로 대출금이 현대계열사 지원에 사용됐다고 믿는 시각은 시기상조다. 정부는 금융실명제를 들어 계좌추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대출한 4,000억원이 현대상선의 장부에 누락됐던 만큼, 이를 금융실명법에 적시된 '부외(簿外)거래'로 간주하면 계좌추적을 못할 것도 아니다.
문제는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다. 온 나라가 각종 의혹과 설(說)에 잠겨 떠내려가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이 산은서 돈을 빌릴 당시 융자 영수증에 서명도 하지 않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사장 서명도 없이 4,000억원이 오가는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정부가 결단을 내려 정면돌파의 자세로 진실을 밝히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계좌추적이 어렵다면 해외로 도피의혹을 받고 있는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 등 현대 핵심 관계자들의 귀국을 종용해 현대가 스스로 밝히도록 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남북관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고 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문제를 어물쩍 넘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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