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부터 뜻밖이었다. 8월 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적자금 국정조사에 전격 합의했을 때 이해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 국정조사를 양당이 어떤 배경에서 합의했는지가 의아했다. 이 궁금증은 2일 마침내 국정조사 무산을 부른 양당 간 TV청문회 증인채택 협상과정을 지켜 보면서 풀릴 수 있었다.민주당은 엉뚱하게도 이석희(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동생 회성(會晟)씨 등 세풍(稅風)사건 연루자를 불러내자고 우겼다. 또 막판에는 이 후보가 살던 서울 가회동 빌라와 관련이 있다는 건설회사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부르지 않으면 청문회를 할 수 없다고 버텼다.
민주당은 "세풍 등이 해당 기업의 부실을 초래,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니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국정조사를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의 본질적 문제였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들은 보통의 경우와 달리 증인과 참고인의 관련 의혹 사실을 밝히는 자료 한 장 제대로 내지 않았다. 부담되는 현안이기도 했겠지만 정말 무성의했다.
한나라당은 어떤가. 겉으로는 국정조사 무산에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이미 지난달 말부터 전의(戰意)가 반감된 상태였다. 자료 제출 미흡을 이유로 내부에서는 "굳이 이번에 강행할 필요가 없다"는 회의론이 팽배했다. 한 특위 위원은 "솔직히 말해 TV청문회에서 터뜨릴 만한 '한 건'이 없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공적자금 비리는 차기 정권에서라도 반드시 규명하자"는 이 후보의 발언이 은연중에 국정조사 관철 의지와 협상력을 떨어뜨린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국회 본회의에서 조사계획서까지 통과된 공적자금 국정조사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 플레이' 탓에 하루 아침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그리고 양당 관계자들은 "국정감사 등 다른 현안에 묻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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