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려자, 중증장애인,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 병원이 개원한다. 다일공동체(이사장 최일도 목사)가 4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 495의 15번지에 문을 여는 다일천사병원은 지하 2층, 지상 6층 건물에 병상 50개를 갖춘 준종합병원으로 개신교 최초의 무료진료 시설이다.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공짜 병원'의 개원을 주도한 최일도(45) 목사는 70여 만부나 팔린 에세이집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으로 세간에 '밥퍼'목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병원 개원을 앞두고 요즈음 하루 4시간 자는 것도 힘들 정도로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다.
최 목사가 무료진료 병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은 1994년 무렵이다. 남편을 잃고 중풍에 걸린 어느 목회자 부인이 다일공동체를 찾아왔다. 그녀를 가톨릭계 무료진료 병원에 입원시키려던 최 목사는 담당 수녀로부터 "개신교에는 동네마다 수억, 수십 억짜리 예배당이 즐비한데도 무료병원 하나 없어 목사 사모를 여기까지 모시고 오냐"는 핀잔을 듣고 입원마저 거부당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였어요. 실의에 빠진 저에게 청량리 588 포주 아주머니들이 병원비에 보태라며 47만5,000원을 모아줬는데, 그 돈이 바로 다일천사병원의 밑거름이 된 거예요. 당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으로 사무실을 꾸려가던 다일공동체가 끝없이 소모품이 나가는 병원을, 그것도 무료진료 병원을 짓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제 정신이 아니라고 모두 말렸어요."
그러나 1,004명으로부터 100만원씩 모으는 후원운동인 다일공동체의 '천사운동'은 희망을 조금씩 기적으로 바꿔나갔다. 지금까지 6차례의 천사운동을 통해 6,000여명이 후원자로 참여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돈은 한 층씩 건물을 올리는 데 사용됐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도 많지만 세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588의 아주머니들, 청량리 인근의 영세상인, 노점상인, 미화원 등 가난한 이웃들이 더 많이 참여했어요. 우리 병원의 자랑은 바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정성이 하나씩 모여 만들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는 다일천사병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최 목사는 말했다. 다일천사병원에는 내과 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한방과 등 13개 진료과목이 개설된다. 현재 30여명의 전문의들이 1∼2시간씩 짬을 내 무료진료에 나서고 간호사, 간병인까지 포함해 9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를 약속했지만 상근 의사는 병원장과 원목을 겸하고 있는 김혜경 목사(내과 전문의) 한 명뿐이다.
다일공동체는 2월부터 병원 기자재 및 운영비 마련을 위해 '만사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1만4명이 매월 1만원씩 병원을 후원하자는 운동으로 이미 4,500명이 후원을 약속했다. 개원일인 4일 오후 6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만사후원의 밤'을 열 예정이다.
"아직 50만명의 후원회원이 있는 충북 음성의 가톨릭계 무료진료 시설인 '꽃동네'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갈 길이 멀어요. 병원의 문턱이 높아 치료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만사운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 땅에 밥 굶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밥상을 차리겠다며 88년부터 청량리 일대에서 행려자에게 식사를 제공해온 최 목사는 다일천사병원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꿈은 반드시 이뤄지는 것 같다"며 함박 웃음을 지어보였다. (02)2214―0652, www.babper.org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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