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마흔이면 불륜 아니면 종교에 빠진다"고 한다. "여자 나이 마흔을 넘기면 할 수 있는 일은 파출부 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소리도 있다. 그러나 여성의 세기라는 2000년대, 위기와 체념의 시기였던 중년을 도전과 개혁의 시기로 삼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새로운 40대'로 지칭되는 이 맹렬 여성들에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오히려 새로운 인생을 향한 출발점이다.▶헤어디자이너 김지희
김지희(40)씨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기위해 지난해 과감하게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대학졸업후 실내디자인회사 직원으로 6개월쯤 근무하다 결혼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접었던 그는 마흔을 코 앞에 두고서야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을 살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부모와 남편, 사회가 원하는 대로 주부역할에 충실하면서 살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엔 내 일을 갖고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1998년 이혼 후 '빨리 재혼하라'는 주변의 설득과 강권에도 불구하고 미용사 자격증을 땄으며 몇몇 미용실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다 지난해 유학길에 나섰다. 인생 80으로 볼 때 더 이상 늦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뭘 해도 제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김씨는 프랑스 유학 1년만인 올해 6월 국가미용기술사자격증(세아페)을 땄다. 외국인 응시생중 최단기 합격생이었다. 김씨는 현재 파리의 유명 미용학교인 다니엘 몬테산토스의 헤어스타일리스트 전문가 과정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소설가 데뷔한 조선희
지난 8월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을 펴낸 작가 조선희(43)씨는 신문기자 출신이다. 2000년 전직 당시 19년간의 기자생활과 '시네21' 편집장을 지내며 줄곧 능력을 인정받아와 그의 홀연한 전업은 지인들 사이에 상당한 화제를 몰고왔다.
"나이 마흔은 남성에게는 직장내나 사회적으로 일정한 위치나 권위를 갖게되는 나이이지만 여성에게는 견제와 퇴장압력이 더 심해지는 시기다. 신문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마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 받았다는 의식이 없었다면 기자직을 그만두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40대의 변신이지만 두렵기보다는 오랜 숙제를 푸는 기분이다. 거의 20년을 남의 작품을 알리는 일을 했다면 이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면서 여성으로서, 기자로서의 경험을 녹여내고 싶다."
▶올 "이상문학상" 권지예
올해 '뱀장어 스튜'라는 단편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권지예(42)씨도 "마흔살이 인생의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권씨는 1991년 프랑스로 유학가는 남편을 따라 도불, 9년간을 이방인으로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40대의 비상을 꿈꿨다.
"유학생의 아내들은 대부분 사회적 연대감 없이 폐쇄적인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마흔을 넘기면 내 인생은 그냥 묻혀지겠구나, 나의 존재는 없어지고 나는 비전없는 삶을 살겠구나 싶은 게 너무 무서웠다. 내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글을 쓰는 동력이 됐다."
■대학원에도 40대 줄이어 늦깎이들, 인생에 도전장
새로운 40대의 등장은 교육현장에서도 쉽게 감지된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몇년새 대학원에 들어오는 40대 초·중반 늦깎이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졌다"고말한다. 함 교수는 이런 현상을 2000년대 들어 맹위를 떨친 '아줌마 담론'의 영향에서 찾는다.
"여자 나이 40이 되면 남편은 사회생활에 바쁘고 아이들은 다 커서 엄마 품을 떠난다. 이때 '나는 뭔가'라는 질문을 하는 여성들이 예전엔 흔히 공허감을 느끼다 탈선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공부와 일을 통해 사회적 자아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아줌마 담론이 중년 여성에 대한 사회의 부당한 편견, 즉 소비적이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편견을 깨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자아를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로 아줌마를 재정립했기에 가능했다."
9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소개되기 시작한 여성 성공기 출간붐의 영향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성운동가이자 페미니즘 계간지 '이프'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권영란씨는 "'나는 희망의 증거이고 싶다'(서진규 저) 류의 여성 성공기들이 나도 노력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역할모델로서 중년여성들에게 변화와 도전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격려하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위기의 중년을 새로운 인생을 향한 도전의 시기로 변환시키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김지희씨는 40대의 반란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세로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 것'을 조언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야만 자기로서 우뚝 서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늦깎이 도전인생을 조바심없이 굳세게 밀고나갈 수 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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