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다는 말은 요즘 같은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시골은 물론 삭막한 도시의 공터에서도 담을 따라 주렁주렁 달려있는 호박이 먹음직스럽다. 호박과 함께 노랗고 탐스럽게 핀 호박꽃도 군침을 돌게 한다. 호박은 봄이 지나 여름이 되어서야 넝쿨로 굵어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봄, 여름에는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꽃을 딸 수가 없지만 요즘 달리는 꽃은 꽃채로 요리해 먹으면 더없이 좋다.꽃을 먹는다는 것은 한편의 아름다운 시를 삼키는 것 같은 아릿한 맛이 있다. 봄날 화전이나 화채로 만들어 먹는 진달래도 그렇지만 한여름, 하얗게 주렁주렁 매달리는 아카시아나 깨꽃도 음식재료로 쓰인다. 꽃을 튀김이나 부각으로 만들어 먹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꽃은 피부를 아름답게 만든다고 전해져 클레오파트라는 로즈워터를 마시며 식용인 장미꽃으로 침실을 꾸며 안토니오를 유혹했다고 전해져 온다.
식용 꽃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호박꽃이다. 정성스레 키우지 않아도 호박이 주렁주렁 열리고 노란 꽃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요즘 이 호박꽃을 보고 있노라면 묵묵하고 듬직하게 자기 일을 해내는 우리 주부들의 모습을 느낀다. 화려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넉넉한 아름다움과 맛을 주는 것이 호박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박꽃을 따로 파는 곳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먹는지 몰라 그렇겠지만 우리나라와 환경이 비슷한 이탈리아에서는 시장뿐 아니라 이른 아침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촉촉한 신문을 덮어둔 박스속에 가지런히 담긴 호박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주로 먹는 파스타나 리조토에 잘라 넣거나 속을 채워 튀김을 하기도 한다.
호박꽃은 오전중 피기 직전이나 약간 입을 열고 있을 때 따 꽃의 한쪽을 찢고 중심의 화분을 제거한다. 흐르는 물에 살짝 씻은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어린잎으로 쌈을 하듯 꽃쌈을 하거나 속을 채워 전을 만들면 좋다. 속 재료로는 버섯이나 호박들을 잘게 다져 볶거나 삶은 감자를 으깬 것을 넣는다. 익은 재료를 속에 담고 꽃 모양으로 다시 형태를 잡는다. 호박전을 만들 때처럼 밀가루를 살짝 바르고 달걀 푼 것에 적셔 전을 지진다. 튀겨도 맛이 있으며 담백하게 즐기려면 찜을 해 양념간장과 곁들인다.
검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호박은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에게 좋은 간식거리. 작은 호박을 살짝 구워 소금으로 간을 해 먹어도 맛이 있고 영양가도 만점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드레싱에 찍어먹어도 좋다. 우리식으로는 쌈장에 찍어 먹지만 드레싱을 되직하게 만들어 찍어 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마요네즈에 날치 알이나 으깬 명란알을 넣고 잘 섞어 만든 드레싱은 알이 터지면서 씹히는 맛이 아주 색다르다.
/오정미 푸드스타일리스트 foodart@chollian.net
▶ 오정미씨는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1985년 뉴욕으로 유학갔다가 요리의 즐거움을 발견, 뉴욕의 '프랑스요리학교'와 이탈리아의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랑콤, 퍼스트 보스턴, 에섹스 하우스, 니코 호텔등에서 요리사로 활동했다. 남편인 일본인 요리사 스스무 요니구니씨와 함께 뉴욕에서 한식과 프랑스요리를 결합한 퓨전레스토랑 '뉴욕·소호'를 열어 미식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현재 푸드아트인스티튜드를 설립, 조리사와 스타일리스트 교육, 식당컨설팅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새칼럼 '요리이야기'에서는 미술학도로서의 미감과 퓨전요리의 본거지 뉴욕에서의 경험을 살린 맛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요리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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