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2000년 6월7일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은 4,000억원이 6월말로 예정돼 있던 현대그룹 계열분리 과정에서 정몽헌(鄭夢憲) 회장측의 계열사 지분 매입용으로 전용됐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당시 정부가 정몽헌 회장 체제 구축을 돕기 위해 대출을 한 셈이어서 현대와 정부 모두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관련기사 3면2일 본보가 현대상선이 당시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던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4,000억원을 일시에 인출한 2000년 6월7일을 전후해 보름여동안(5월25일∼6월9일) 정몽헌 회장측의 계열사 주식 매입대금으로 4,108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몽헌씨가 회장으로 있던 현대건설은 5월25일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 등의 현대상선 지분 432억원어치를 인수, 현대상선의 최대주주가 됐다.
또 5월29일에는 정몽헌 회장 자신이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건설 지분(419억원)을 인수하며 현대건설의 최대주주가 됐다. 산은 지원을 받은 직후인 6월9일에는 현대전자·현대상사·현대증권 등이 정몽구(鄭夢九)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유니콘스 현대석유화학 주식 등을 313억원어치 인수하는 등 5월25일에서 6월9일까지 정몽헌 회장 계열사들은 지분인수에 총 4,108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34개사에 달하던 현대 계열사들을 몽헌 그룹(상선·건설·전자·증권 등)과 몽구 그룹(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캐피털)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정몽헌 회장측이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정몽구 회장 소유의 현대 계열 지분을 인수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현대상선 핵심 관계자는 "4,000억원의 용도가 대북지원은 아니다. 현대그룹과 관련돼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말 못할 사연이 있다"고 밝혀 산은 대출금이 편법적으로 유용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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