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의 난'(1999년) 이후 침묵하던 박광수(47)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이재수의 난'이 흥행에 실패하자 충무로에서는 "박광수(47) 감독은 앞으로 영화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영화 흥행에는 복합적인 변수가 있다. 흥행이 감독의 책임이라는 공식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제작비를 댄 강우석 감독 역시 현장에 찾아와 "흥행 신경 쓰지 말고 작품만 잘 찍으라"고 했다. 제작비가 많이 들면 장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제작비를 더 불려 마케팅한 것도 사실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보았나. 장선우 감독에 대한 비난도 부당한가.
"영화를 보았는데, 난 좀 어렵더라. 영화는 프로듀서와 감독이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프로세스에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감독만 비난을 받는 것은 문제다. 그러면 감독이 제작자까지 겸하지, 뭣 하러 감독만 하겠나. 장 감독만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1999년 당시로서는 최고의 제작비(31억원)를 들인 영화 '이재수의 난'이 관객 20만명으로 흥행에 참패한 후(장선우 감독이 '110억원'짜리 사고를 쳤으니 이제는 다 잊혀지겠다), 아니 더 정확히는 감독이 했다는 "난 흥행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뻔뻔한(?) 말이 전해지면서 논쟁이 적지 않았다. 충무로가 논쟁하고 있는 사이 2000년 1월부터 박 감독은 이미 다른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비무장지대에 나타난 처녀 귀신과 초소 병사의 사랑을 다룬 초현실적 사랑 이야기 '방아쇠'가 그것이다.
"80년대 파리 유학시절부터 비무장지대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그곳에서는 바람을 타고 흘러 다니는 대남, 대북 선전방송 소리가 참 몽롱하게 들린다. 사람이 사는 공간의 이미지가 아니다. 귀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초현실적인 사랑이 공간의 정치적 현실을 더 극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93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95년) '이재수의 난'등 근현대사의 인물에 사회의식이라는 렌즈를 들고 접근해온 그가 변한 것일까. "나는 리얼리스트라는 말을 찬사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그냥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한 것이지 세 영화 모두 기계적인 리얼리스트의 방식은 아니었다고 본다. '전태일'도 문성근의 의식 속에서 보인 전태일이었고, '이재수의 난' 역시…"
주진모, 지진희에 그가 발굴한 신인 여배우 정애연까지 이른바 '스타' 캐스팅에 상업적 냄새가 물씬한데 어째 감독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또 '한 예술' 할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이다. "배우 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 상업적, 대중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영화를 보면 관객 취향이 바뀌고 있고, 그건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하다.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가 하고 싶다." '빤스 벗고 덤벼라' 같은 단편 영화를 만들며 젊은 영화인들의 호흡을 익혔다는 박광수. 5, 6개 영화제 초청을 거부하며 "이제 전국민이 지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 "박광수 감독, 아 머리 아파" 이제 더 이상 이런 말은 싫다는 감독의 7번째 영화는 10월말 울산 울주군 천왕산 사자평에 세운 세트에서 첫 촬영에 들어간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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