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에 대해 국제 전문가들은 반환 원칙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방법론에서는 이견을 보였다. 1일 서울 타워호텔에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문화재청 주최로 열린 '문화재반환 촉진 및 불법거래 방지 국제 전문가 회의' 외규장각 분과회의는 협상과 여론화를 통한 해결을 권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당초 기대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런 결과지만, 한국과 프랑스간 공방에 그쳤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끌어낸 점은 적지 않은 수확으로 평가됐다.회의는 토론자로 참석한 한국 학자들과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간 감정 섞인 설전으로 초반부터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됐다. 파스칼 다이어스 주한 프랑스대사관 부문정관은 "프랑스와 한국은 1993년, 2000년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대여'라는 해결책을 마련했다"면서 "이제 교환 시기만 남겨놓고 있는 만큼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 협상 대표인 한상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은 "정상회담에서는 원칙만 합의했으며 양측 협상대표가 몇 가지 합의안을 마련해 양국 정부에 권고했으나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근관 건국대 법대 교수는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은 정치적 합의일 뿐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분과회의 의장을 맡은 폴라린 실론 나이지리아 이바단대 법대 교수는 이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약탈당한 문화재를 다른 문화재를 주고 받아오는 방식은 납득할 수 없다. 한국문화가 담긴 외규장각 도서는 한국에 반환돼야 마땅하다"고 말해 우리측에 힘을 실어줬다.
프랑스군 약탈 행위의 국제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견해가 크게 엇갈렸다. 슈테판 터너 독일 자르브뤼켄대 법대 교수는 "1866년에는 문화재 약탈에 관한 국제법 규정이 없어 한국이 반환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도 카두치 유네스코 문화유산국 국제법규과장은 "당시 국제법에 약탈 관련 조항은 없었지만 문화재 파괴에 관한 근거는 분명 있었다"면서 "프랑스군의 방화 행위는 국제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근관 교수도 "서구 나라들끼리의 국제법을 자동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대부분 법적 소송을 통한 해결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면서 다른 해결책을 찾도록 권고했다. 린델 프로트 전 유네스코 문화유산국장은 "소송은 이길 가능성도 희박한데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면서 "법에 호소하기보다 윤리적 문화적 논쟁을 벌이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충고했다. 피터 펜츠 덴마크 국립박물관 국제소장품 관장도 "과거행위가 당시 법 규정상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를 따지기 보다 오늘의 관점에서 그 문화재가 어느 곳에 있어야 옳은지를 문제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회의를 마친 후 하루 뒤인 4일 약탈 문화재 반환을 촉구하는 국제 권고안을 채택할 예정이나 이날 토론 분위기로 볼 때 원론적 언급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김여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상당수 참석자들이 한국측 반환요구의 타당성을 인정한 것은 고무적"이라면서 "앞으로 국제적 여론화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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