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대 초, 서울지검 공안부에 재미있는 정보보고 문건이 하나 올라왔다. 풍수지리에 밝은 한 점쟁이가 "북악산(北岳山) 자락에 터널을 뚫으면 산이 품고 있는 무기(武氣)가 빠져나갈 것"이라며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 궁궐을 세운 이래 무신정권(武臣政權)을 지켜준 그 기운이 없어지면 군사정권도 끝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정보였으나, 그때 필자에게 이 얘기를 해준 공안검사는 "그 점쟁이는 설화(舌禍)를 겁내 외국으로 갔다더라"고 했다.■ 1986년 8월 경복궁 쪽에서 보아 청와대의 왼편에 해당하는 곳에 자하문 터널이 완공됐다. 그리고 우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점쟁이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이듬해의 6·10항쟁을 거쳐 비록 군인 출신이었어도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이 나왔고 그 다음에는 '문민(文民)정부'가 탄생해 5·6공을 군사쿠데타에 의한 불법적 정권으로 못박았다.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고 일반인의 청와대 관광이 허용되는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때 그 일이 생각나곤 했다.
■ 16대 대통령 선거를 두 달 남짓 앞두고 청와대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신당 창당을 준비중인 정몽준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옮기겠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청와대를 중앙부처와 함께 아예 충청권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사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약속의 지적 소유권은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이인제 의원에게 있지만, 이제는 모든 후보들이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 청와대의 구조는 대통령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떨어지도록 되어 있다. 본관과 비서실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담으로 막혀 있다. 본관에서 근무하는 의전수석실 직원을 제외하고는, 비서실장을 포함한 모든 비서실 직원은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경비초소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다른 사람과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의 속성과도 관계가 있으리라. 어쨌든 이제 몇 달만 지나면 그런 청와대의 모습도 옛날 일이 될 것 같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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