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부산 Asiad/도복엔 일장기… 가슴엔 태극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부산 Asiad/도복엔 일장기… 가슴엔 태극기

입력
2002.10.02 00:00
0 0

1일 유도 남자 81㎏급 결승전이 열린 부산 구덕실내체육관. 일본의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成勳·26)는 한국의 안동진(경남도청)과 5분간 혈전을 벌이고 승부를 가리지 못해 심판의 최종판정을 기다렸다.경기종료 후 채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아키야마 요시히로에게는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안동진과 엎치락 뒤치락 하며 최선을 다한 터라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혹시 하는 불안감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결과는 2-1로 판정승. 아키야마는 매트에서 껑충 뛰어오른 뒤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아키야마는 지난해까지 만해도 재일동포 4세인 한국인 추성훈이었다. 아키야마는 그러나 학연과 지연을 따지는 한국 유도계의 풍토에 실망, 일본에 귀화했다.

지난해 태극마크를 달고 몽골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추성훈이기에 이날 금메달을 따고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겉은 일본인일지 몰라도 몸에는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장기가 아닌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고 이 자리에 섰더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추성훈은 태극전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일본귀화를 포기하고 1998년4월 부산시청에 입단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추성훈은 74년 전국체전에 재일동포 유도대표로 출전했던 아버지 추계이(52)씨의 뜻에 따라 한국행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고 판정에서 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크게 실망한 그는 결국 지난해 10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일본 실업팀 헤세 간사이에 입단, 일본에 귀화했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좋은 결과를 낳았다. 이런 그의 인생행로를 잘 알고 있는 일본의 사이토 감독은 그를 이해한다는 듯 경기 후 아키야마를 끌어안고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러나 유도 때문에 조국을 버리고 일본인이 된 것에 대한 부담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그는 "한번 한국인은 영원한 한국인이다. 유도를 하기 위해 귀화한 것이다"고 말하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추성훈은 서툰 한국말로 "지금 이순간 나를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 드린다. 한국팬들도 계속 나를 응원해줬으면 좋겠다"며 아직도 자신이 한국인임을 강조했다..

/부산=이범구기자

■ 추성훈 일문일답

아키야마는 금메달을 딴 뒤 목표를 이뤘다는 듯 다소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했다는데.

"그렇게 말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유도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좋아지면 유도를 한 보람이 있다."

―경기가 끝난 뒤 일부 관중이 야유를 보냈다.

"경기장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안동진 선수를 잘 아는가.

"합숙을 함께 해본적은 없다. 연습게임을 몇 번 해본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유도하기 불편해 귀화했는가.

"내가 유도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귀화했다. 일본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일본의 어떤 점이 좋았나.

"일본은 종주국답게 강한 선수들이 많다. 또 훈련여건이 한국보다 낫다. 내가 원하는 유도를 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고향 한국에서 한국선수를 이겼다. 소감은.

"상대선수를 꺾어 기쁠 뿐이다. 한국사람이라고 특별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부산=이범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