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鄭夢準) 의원은 1일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총무 문창극·文昌克 중앙일보 이사) 초청 토론회에서 대북 비밀지원 의혹, 현대와의 관계 설정 등 현안과 주요 정책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토론회에는 배정근(裵貞根) 한국일보 경제부장, 전진우(全津雨)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현일(金玄鎰)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형민(金亨珉) SBS 선거방송기획팀 부장, 황정미(黃政美)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등이 패널리스트로 참석했다.`
● 현대의 대북비밀송금 의혹
―현대를 통한 4억달러 제공설 등 남북 정상회담 뒷거래 의혹으로 시끄럽다.
"나도 기사 보고 있다. 인도적 지원과 뒷거래는 전혀 다르다.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를 포함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 빨리 진상을 규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현대상선이 2000년 5월 현대아산에 560억원을 증자했다. 그 돈의 행방에 의혹이 있다. 현대중공업도 현대아산의 277억원 증자에 참여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말까지 현대그룹 계열사였다. 당시 나는 현대중공업의 소액 주주였고 현대 관련 회사들이 35%이상 대주주였다. 현대중공업의 계열 분리는 작년 말이다. 나는 고문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그런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한 일이 없다. 또 최근 한 두 달 전까지 나는 국내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법률적으로도 현대중공업은 현대 계열사 중 하나여서 내 의사와 관련 없이 진행된 일이었다. (증자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개인적으로 금강산 사업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러나 현대가 좀 능력에 비해 너무 큰 사업을 벌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현대그룹에서 떠났다고 현대 관련 질문의 답변을 피하는 것은 곤란하다.
"요즘 기사가 하도 많이 나서 나도 사후적으로 공부중이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계열사 중 두 번째로 많이 현대아산에 투자한 2대 주주라는 것을 아는가.
"2대 주주라는 것은 모르나 증자에 상당히 참여한 것은 안다."
―현대아산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초기 투자와 증자금을 모두 합하면 890억원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모른다면 주주로서 재산을 잘못 관리한 게 아닌가.
"나는 국회의원이 되면서 현대중공업의 고문이 됐다. 현대중공업은 큰 회사다. 예를 들면 해외에서 6억, 7억달러의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신문 보도를 통해 아는 경우도 많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독립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북 비밀 송금 의혹과 관련해 요시다 다케시(吉田猛)라는 일본인의 이름이 나온다.그 사람을 아는가. 만난 적은.
"15, 16대 국회 통외통위에 있으면서 여러 의원이 그 사람을 언급한 것을 들은 적은 있다. 그 분이 무슨 역할을 하는 느낌을 받았고 왜 그런 분이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난 적은 없다."
―상면한 사실이 나오면 책임지겠는가.
"여러 공식적인 자리에서 많은 일본인을 만났으니까 만났는지는 모르나 만나서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은 일은 없다."
● 현대중공업 주식 처리와 92년 대선 지원
―현대중공업 주식을 은행에 신탁키로 한 것은 정치는 정치대로 하고 재산은 재산대로 갖자는 발상으로 비쳐진다.
"정치를 하면서 무책임하게 일을 할 수는 없다. 현중에는 소액주주가 수십만명이다. 이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다. 여러 경제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한 것이다. 나는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경제장관을 하면 아주 좋다는 생각도 한다."
―정 의원과 같은 개인 재산의 은행 신탁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전무하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큰 재산을 맡기 위해 정 의원에게 잘 보여야 하고 객관적인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한다. 결국 정 의원 의사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다. 뉴욕시 이해상충위는 블룸버그 시장에게 주식 매각을 권유한 일도 있다.
"블룸버그 시장의 재산 대부분은 블룸버그 회사 주식인데 그는 그것을 하나도 팔지 않았다. 그게 10억달러정도가 된다고 들었다. 그는 3,000만달러 정도 되는 다른 기업 주식을 팔았다."
―뉴욕시 이해상충위는 블룸버그 주식의 20%를 소유한 메릴린치에게 특혜가 갈 것을 우려해 뉴욕시 발주 사업 선정에 시장이 간여하지 못하게 제한했다.
"블룸버그가 사업자 선정에서 빠지겠다고 한 것은 당연하다."
―선친인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이 199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현대가 그룹 차원에서 지원한 사실을 인정하나.
"구태여 인정하고 말고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잘못되고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때 의사결정에 참여했다면 다른 건의를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도 잘못이 있다."
―이번 대선서도 현대그룹에서 음으로 양으로 돕거나 불법 편법 탈법을 저지를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
"누구든지 법을 어기는 사람은 다 처벌 받아야 한다. 어제 저녁에 갑자기 집안일과 관련해 이 생각 저 생각이 났다. 현대자동차를 책임지고 있는 둘째 형은 원래 다정다감한 분이다. 큰 회사 경영을 맡으면서 공사를 구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내가 희망하는 것은 법도 지키고 공사도 구분하면서 개인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양립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경영 일선에서 후퇴할 때 여러 어려운 일이 많았다. 그 때 불미스런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형 주위에 있어서 형제간 사이를 멀어지게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혹시라도 한다면, 그것은 우리 형제나 회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중공업에서 509억원의 기업자금이 92년 당시 국민당으로 흘러 들어갔다. 당시 자금 유출을 알았는가. 또 개입했는가.
"알았으면 막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못한 것 역시 내 책임이다."
● 초원복집 사건
―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해 4명에게 도피자금 1,000만원씩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 목적을 위해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도 된다는 것인가.
"공명선거 캠페인을 보면 부정선거를 신고하자는 표어가 자주 나온다. 전직 법무장관과 권력책임자들이 아침에 식당 지하실에 가서 불법적 음모를 꾸몄다면 모든 국민은 신고할 책임이 있다. 나는 조사받으면서 도피가 아니라 피신이라고 얘기했다. 그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 공무원이었는데 폭행까지 당했다. 그런 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
―대통령이 되려면 다른 일반인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한 법 개념을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리에 껌 버리고 담배 버리는 사람을 신고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과 불법을 묵인하는 사람은 시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92년 대선 때 현대가 저지른 불법 행태도 인정해야 하지 않나.
"법은 공평히 적용돼야 한다. 내가 불법을 고발한 방법이 불법이었다면 불법을 저지른 사람도 최소한 기소해야 하는데 나만 기소했다. 이게 과연 법 양식이 있는 나라인가 의심을 갖고 있다."
● 보유재산과 현대 주가조작 관련 의혹
―재산이 1,700억원을 넘는다. 현대중공업 주식이 1,500억원이다. 정 의원이 개인적으로 번 돈은 얼마인가.
"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그 재산을 내가 다 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 덕분에 재산을 장만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식 매입과정에서 증여세, 상속세를 냈는가. 금액은.
"아버지가 증여세나 상속세를 내지 않고 버틸 특별한 비결을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정부와의 관계를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했으나 별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많은 세무조사가 있었다."
―액수가 궁금하다. 대략 얼마나 냈나.
"수학공부를 못해서 숫자는 잘 기억 못한다. 세금은 다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숫자에 어둡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경제학은 좋은 학문이나 재미있는 학문은 아니다."
―98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률적으로는 아니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한 금감원 행태가 조작이라고 얘기한 것으로 안다. 또 의원 신분으로 금감원 간부를 만나 항의했다는데.
"아프리카에서 귀국하는 길에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나쁜 사람으로 사진이 났다. 정부에 있는 일부 분들은 정책을 무리하게 집행하는 과정에서 수용이 되지 않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분들 말씀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첫날은 부당이득을 발표하고 기자들이 고발 여부를 묻자 도덕적 문제일 뿐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도덕은 개인이 판단하고 법률은 당국이 판단한다. 어떻게 그런 발표를 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현대전자 주가조작은 이익치(李益治) 회장이 주동해 현대계열사를 동원, 현대전자 주가를 한 달새 2배로 끌어올려 판 것이 문제다.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 사건에 연루됐고 당사자라면 조사 받고 의원을 그만두지 않았겠느냐. 나를 왜 뉴스에 냈는지 궁금하다."
―현중도 800만주의 현대전자 주식을 매입한 사실을 모르나.
"처음듣는 얘기다. 나중에 확실히 알아 답변하겠다."
● 현대 특혜 및 권력 유착 의혹
―현대그룹이 특혜를 받은 흔적은 많다. 97년 대선때 정주영 회장이 500억, 1,500억원을 지원해 그것을 바탕으로 특혜가 이뤄졌다는 소문이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설을 말하는 것은 공평치 못한 질문이다."
―정 의원은 TV토론서 정주영 회장이 92년 대선이후 정치권에 불법적인 자금을 갖다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홍업씨는 현대에서 16억원을 받았고 당국은 이것이 정주영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했다.
"아버지가 92년 당시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전에 기업인으로서 대통령에게 많은 자금을 줬는데 앞으로 이런 것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얼마 전 방송에서 한 얘기에 관해 오해가 있다면 잘못됐다고 말하겠다."
―한나라당은 정 의원이 DJ의 양자라고 말하는데.
"우리 집안은 형제가 많아 양자가 따로 필요 없다. 그쪽 책임자는 아들들이 몸이 약해 양자가 필요할 지 모르겠다."
―김현철씨를 만난 일이 있나.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전화 통화한 적은 있다."
―현대계열사 대표를 통해 면담을 요청해 만났다는데.
"사실이 아니다."
● 지지세 규합 등 신당 창당 문제
―정치개혁을 내걸었지만 이와 무관한 참모들이 주변에 있어서 개혁 추진이 어렵다는 얘기가 있다.
"정치개혁과 무관하고 이미지가 나쁜 사람, 구시대 정치인 등과 같이 하느냐는 말씀인데 대통령이 되면 미국 대통령이 하는 것처럼 아침 식사도 국회 여야 지도자와 같이 했으면 한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현역의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쁜 정치인이 있다는 말에 동감한다. 나도 인권을 탄압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과는 같이할 생각이 없다."
―지역감정과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비전은.
"대통령이 되면 내가 속한 정당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당의 포로라는 말은 미국정치에서 쓰는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정당 총재라 소속 정당사람을 잘 대우하고 상대편 정당사람을 탄압해 왔다. 현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은 5년 단임제다. 거국적 인사와 정책을 펴라는 게 헌법 정신이다. 이 취지대로 하면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반 이회창, 비 노무현 세력이 정 의원의 지지기반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정치 구도인데 이들이 정치개혁의 주도세력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 내 지지세력은 형성 과정에 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반이회창 비노무현 세력만 같이 하고, 그렇지는 않다. 내가 두 사람을 미워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반 이회창이 아니다. 한나라당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적임자로 이 후보가 1위였고 내가 2위였다. 나와 한나라당 정서가 많이 일치하고 지지세력이 중복돼 있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정 의원 캠프는 70년대 운동권자인 이상주의자와 아마추어가 결합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자민련 민국당 등과 제휴에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정치를 과소평가하는 순진함은 없는가.
"순진함보다는 순수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생각한다. 어느 신문이 다국적군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요즘은 다국적군이 힘을 잘 쓴다."
―구체적으로 민주당의 비노그룹 의원과 위원장을 겨냥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회창 후보의 대안으로 정 후보를 생각하는 세력을 겨냥하고 있나. 이념이나 노선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큰 덩어리를 얻겠다는 것은 아닌가.
"나는 국민통합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번 대선은 지역감정 대결 구도를 깨트릴 좋은 기회다. 이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으나 진보와 보수는 우리사회에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고 국민을 편가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국가 과제별로 국익을 위해 하나씩 토론해 정하면 되지 진보 보수의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나는 누구에게 업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애송시라고 하는데.
"집에 그 시를 글씨로 쓴 게 두 점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라고 기억된다."
―그 시와 정 의원의 삶의 궤적은 많이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김 시인의 수형기를 통해 돌멩이 사이에서 자라난 풀을 보며 생명의 소중함과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을 읽었다. 백기완 선생님은 가장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이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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