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월드컵 경기장이 아니에요"지난달 30일 부산 부경대체육관에서 열린 역도 여자 48㎏급 경기. 1, 2위를 다투던 미얀마의 카이미윈이 인상 3차 시기에서 90㎏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노란 옷을 맞춰 입은 100여명의 미얀마 서포터스들은 일제히 경기장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잠시 호흡의 균형을 잃은 미얀마 선수가 멈칫하자 경기본부측은 장내 방송을 통해 "선수들이 역기를 드는 순간에는 응원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오히려 경기장은 다른 서포터스들까지 합세한 기싸움장으로 변했다.
붉은악마식 꽹과리 응원이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경기까지 이어지면서 선수들의 실력발휘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아시아인의 화합을 바라는 서포터스들의 열성응원 덕에 아시안게임이 빛을 발하지만 경기 진행을 고려하는 성숙한 '응원매너'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 때문에 매 경기마다 진행 요원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다.
지난달 29일 부산 강서체육관에서 열린 펜싱 플뢰레 결승전에서도 호루라기를 동원한 응원단의 소음 때문에 선수가 기습공격을 받아 메달색깔이 달라지기도 했다. 김상훈(29·울산시청)이 왕하이빈과 경고 2개씩을 교환하는 신경전 속에 1회전을 11―8로 리드해 금메달 획득이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응원단이 외친 '대∼한민국' 구호가 좁은 실내 체육관을 울리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김상훈은 역습을 당하면서 7점을 허용, 은메달에 머물렀다. 준결승에서 탈락한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영호(31·대전도시개발공사)는 "함성과 호루라기 소리가 거슬려 당장 올라가 항의하고 싶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수영에서도 수십분의 일초를 다투는 입수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응원단 함성 때문에 경기 관계자들이 일제히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고 조용히 해줄 것을 요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00m 여자 접영에서는 응원단 노랫소리 때문에 출발신호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 선수 2명이 미리 물에 뛰어들었다.
선수단 관계자들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를 고려하는 성숙한 응원을 촉구하고 있다. 양궁 김정호(金正浩·47) 감독은 "활시위를 겨누는 순간부터는 선수들에게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응원을 자제해주면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부탁했다.
/부산=최지향기자 mis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