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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서준식 옥중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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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서준식 옥중서한

입력
2002.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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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로서 가장 비윤리적인 행위는 대상으로 삼은 책을 완독하지 않고 서평에 임하는 것일 터이다. 기자는 지금 그 비윤리적 행위를 하려 한다. 이 불성실한 서평자의 눈에 걸려든 책은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야간비행 발행)이다.기자는 지난 한 달간 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서 조금씩 읽었다. 한 달간 책을 곁에 두고도 완독하지 못한 것은 다소 괴상한 독서 방법 때문이었다. 기자는 이 책을 일반 단행본을 대하듯 읽지 않고, 사전이나 성경을 대하듯 읽었다. 사전이나 성경을 대하듯 읽었다는 것은 아무 데나 펼쳐서 마음의 줄이 울리면 정색을 하고 읽어나가다가, 좀 지루한 듯 싶은 대목을 만나면 이내 다른 곳을 찾아 읽어나갔다는 뜻이다. 아마 그 부피에 질려서 그랬을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800쪽이 넘는 부피로 보나 자그마한 활자로 보나 이 책은 사전이나 성경을 닮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다 보니 어떤 대목은 몇 차례 반복해서 읽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되었다.

이런 성글고 게으른 독서는 '피로 쓴 편지'라는 상투적 비유가 그 고전적 실(實)을 얻었다 할 이 서한집에 대한 결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자는 엉겁결에 실천하게 된 이 '이단적' 독서법이 '서준식 옥중서한'을 올바르게 읽는 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서둘러 한 번 읽고 치워둘 책이 아니라, 늘 곁에 두고 조금씩 곱씹어보아야 할 책이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향유하는 것은 어떤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끝없이 긴장하고 있는 어떤 정신과의 교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씩 곱씹다 보면 언젠가는 완독에 이를 터이다.

'서준식 옥중서한'은 육체적·정신적 한계 상황 속에서 곧추세워진 어떤 자존의 기록이다. 인간의 위엄을 향한 저자의 갈망은 서신 검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디어졌을 언어의 갑각을 순간순간 뚫고 나와 독자의 마음을 그윽한 긴장으로 채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재일동포 2세인 서준식씨는 1971년 '유학생 간첩'으로 몰려 7년형을 선고 받았고, 형기를 마친 뒤에도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전향서를 쓰기를 거부한 탓에 다시 10년의 보안감호처분을 받았다. '서준식 옥중서한'은 그 17년의 감옥생활 동안 저자가 가족과 친척들에게 쓴 편지 모음이다.

서준식씨는 1984년 2월 17일 누이동생 영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에서 "'좋은 책'이란 한 마디로 (내 생각으로는) 착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책이다. 그런 '좋은 책'을 수많은 나쁜 책들의 홍수 속에서 족집게 장님 같이 집어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온몸으로' 착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불태우며 '좋은 책'과의 '공감대'를 자신의 내부에서 키우는 일일 수밖에 없다"고 쓰고 있다. 기자 생각으로는 '서준식 옥중서한'이 바로 그런 '좋은 책'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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