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것조차 포기했어요." 코스닥지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30일 투자자들은 코스닥 시세판에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주가가 폭락하면 겁에 질려 주식을 내던지던 투매(投賣)현상도 없고, 그렇다고 싼 값에 주가를 사려는 저가 매수세력도 들어오지 않아 '폐가'를 방불케하는 썰렁한 분위기를 보였다. 이날 하루 코스닥 거래대금이 4,015억원으로 3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매수세력이 실종된 코스닥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코스닥기업 대주주와 일부 임직원들만 거래해도 4,000억원은 넘을 것"이라는 탄식도 터져나왔다. 한 투자자는 "정보기술(IT) 거품붕괴의 끝이 보이지 않는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불공정거래가 포착되는데 누가 투자하겠습니까"라며 '코스닥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을 지적했다.
▶등돌린 투자자
한국 신경제의 상징인 코스닥시장이 1996년 개장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있다. 등록기업들의 낮은 수익성, 아직도 미흡한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과 대주주의 주가조작 등에 따른 신뢰상실로 코스닥시장은 '우량 벤처의 산실'이 아닌 '작전세력이 판치는 투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때 '닭(코스닥)이 소(거래소)를 잡았다'는 소리를 듣던 코스닥이 이제는 거래소는 물론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시장에도 뒤지는 '3류시장'이 돼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거래량은 3월말에 4억주를 웃돌았으나 코스닥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거래가 뜸해져 최근에는 거래량 2억주, 거래대금 5,000억원을 밑돌고 있다. 99년말 98조7,040억원이던 시가총액은 38조1,590억원으로 쪼그라들어 2년9개월만에 60조원 이상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잇따른 주가조작 사건과 대주주의 불공정거래는 투자자들이 코스닥에 등을 돌린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8월의 델타정보통신 법인계좌 도용사건은 코스닥종목이 주가조작의 온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코스닥의 주가수익비율(PER)은 42배로 여전히 고평가돼 있다는 평가가 많아 추가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코스닥에 물밀듯 들어온 벤처기업들이 공모와 유상증자를 통해 끌어들인 자금을 거의 소진하면서 연말에 부도업체가 쏟아지는 '코스닥 대란설'도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고려대 박경서 교수는 "코스닥 기업들의 내재가치가 낮고 지배구조가 매우 취약한 점이 코스닥르네상스를 실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등록 기업수가 거래소보다 200여개나 많은 832에 달하고, 증자를 남발하면서 주식을 살 투자자는 없는데 물량만 넘쳐나는 구조적인 공급과잉현상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퇴출 활성화해야
전문가들은 코스닥시장이 이대로 붕괴될 경우 개인들의 엄청난 자산손실은 물론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존립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호주 코스닥증권 사장은 "세계화된 자본시장에서 중소기업과 신사업에 대한 지원은 정부의 직접지원이 아닌 시장을 통한 간접 지원형태를 띠게 마련"이라며 "벤처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코스닥이 무너질 경우 어렵게 성장한 중소·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은 불을 보듯 뻔하고, 우리산업의 성장기반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위원회는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대주주들의 주가조작 및 분식회계를 막기위한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독당국의 솜방망이제재로 실효성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부실기업 퇴출 기준을 보다 엄격히 적용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신규등록 기업은 꾸준히 증가한 반면 주식을 사들일 수요기반 확충은 이뤄지지 않아 심각한 수급 불균형이 고착화됐다"며 "퇴출심사를 엄격히 해 시장투명성을 높이고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등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獨·日 IT株 시장도 "홍역"
정보기술(IT)거품이 꺼지면서 기술주를 거래하는 선진국 주식시장들이 문을 닫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유럽의 나스닥을 표방하며 화려하게 출발했던 이스닥이 나스닥시장에 인수된데 이어 지난달에는 일본 나스닥재팬이 합작파트너였던 나스닥의 지분 철수로 존폐위기에 몰려있다. 최근에는 유럽 최고의 IT시장으로 군림했던 독일의 기술주 전문 거래소 노이어마르크트(NM)마저 거래가 뚝 끊기면서 설립 5년6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NM은 1997년 설립 당시만 하더라도 채권 위주의 자금조달에 익숙해있던 유럽 경제에 주식문화를 활성화시키며 2000년 4월 시가총액이 2,330유로까지 급팽창했다. 하지만 상장기업들의 회계부정이 잇따라 터지고 IT거품이 붕괴되면서 NM은 날개도 없이 추락, 2년6개월만에 시가총액이 거의 10분의 1수준인 230유로로 급락했다. NM은 시장 폐쇄에 따라 내년초 프랑크푸르트거래소와 합치기로 했고 주식 보유자들은 시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증권회사를 통해 주식을 사고 팔아야 한다.
/김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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