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학급수가 줄고 있다고 한다. 사람과 돈이 몰려 든다는 그 물 좋은 강남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유가 재미있다. 아니 슬프다. 인근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의 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분은 한국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다.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계급 투쟁'의 핵심은 '인맥 만들기'다. 한국의 그 살인적인 대학입시 경쟁도 그 본질은 '인맥 만들기 전쟁'이다. 서울대의 위대성도 타 대학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맥에 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이 생존경쟁에서 때로 절망감을 느끼곤 하는 것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인맥과 관련된 것이다. 아니 인맥이 곧 능력으로 통용된다.
인맥의 중요성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건 인맥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으며 '인맥의 중앙집권주의' 또는 '인맥의 독과점체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맥이 없으면 좀 손해 보는 정도가 아니라 성공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인맥 사회의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견제 장치는 부정부패의 활성화다. 인맥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것도 여의치 않다. 그간에 발생한 모든 대형 부정부패 사건들이 잘 보여주었듯이, 한국에선 부정부패마저도 인맥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맥이 없으면 큰 뇌물을 주는 것도 여의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합법적인 로비 문화가 발달한 것도 아니니, 한국에선 인맥 없으면 입에 풀칠하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인맥의 절대적 중요성에 수긍한다면, 한국의 대학입시 경쟁을 '살인적''전쟁' 등과 같은 단어들로 표현하는 건 엄살에 지나지 않으며, 전쟁이라 한들 아직 그 중요성에 상응하는 수준의 치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4강의 1등 공신이라 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로 '인맥 무시하기'를 지적하면서 우리도 그걸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대부분 진심으로 한 말 같지는 않다. 그 누구도 '어떻게'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인맥'의 문제에 공개적으로 정면 대응할 때가 되었다. 이 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 공론화하지 않는 한 학벌주의, 부정부패, 지역갈등, 소수자 차별 등과 같은 주요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한국 엘리트들의 주요 에너지가 순전히 국내용에 지나지 않는 '인맥 만들기'에 과도하게 투자되고 있는 현실이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및 학계의 '인맥 문화'도 지독한 편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공론화 작업에 기대를 거는 것 이외에 다른 답이 없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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