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선생님은 평소 말이 별로 없으시고 밤낮으로 무용 창작과 연구에 몰두하셔서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죠. 딸(안성희)에게 작품을 지도할 때 문 틈으로 몰래 훔쳐보곤 했는데 어찌나 무섭게 호통을 치는지 우리가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습니다."전설적 무용가 최승희(崔承喜·1911∼?)의 제자인 쑤쵸(舒巧·69) 중국 상하이무용단 명예단장과 쓰친타를하(70) 내몽골자치구 무용가협회 명예주석은 스승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27일 개막한 '탄생 90년, 최승희 국제무용축제' 참가를 위해 방한한 이들이 30일 오전 김백봉, 전황씨 등 국내 제자들과 함께 '내가 기억하는 최승희'를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최승희가 50년대 초 중국 정부 초청으로 베이징 중앙희극학원 무도(무용)반 교수로 재직할 때 그의 문하에서 중국 고전무용은 물론 신무용, 발레, 남방무용 등을 익혔다.
쑤쵸는 "선생은 당시만 해도 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중국 고전무용의 기본과 교습법을 확립한 분으로, 오늘날 중국 무용계에서도 빛나는 무용가로 존경받고 있다"면서 "특히 선생의 작품들은 우아한 고전미는 물론 요즘 사람들에게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만큼 현대적 감각이 녹아있다"고 평가했다. 쓰친타를하도 "선생의 가르침 덕분에 우리가 중국의 1세대 무용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면서 "50년이 지났지만 다시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승희의 제자이자 동서인 김백봉(예술원 회원)씨는 "선생은 무대에서 작은 실수라도 한번 하면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아 제자들이 '염라대왕'이라고 불렀다"고 회고했다.
간담회에는 국내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둘째오빠 승오씨의 장남 최광섭(光燮·74)씨도 참석, 최승희의 초창기 시절 사진 등을 공개했다. 그는 아버지가 최승희를 따라 월북한 뒤 연좌제에 걸릴 것을 우려해 최근까지 이 사실을 숨긴 채 어렵게 살아왔다.
최승희 연구의 권위자인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는 "앞으로 최승희가 북한에서 숙청된 67년 전후생활 등 베일에 가려진 사실들을 밝히는 작업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한 교포 작가가 최근 펴낸 최승희 전기에서 그가 숙청된 뒤 총살을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직업 박탈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면서 "북한과의 문화교류도 진척되고 있는 만큼 당시 숙청의 성격과 현재 북한에서의 평가 등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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