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장기침체 등의 여파로 경기는 갈수록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가계 빚은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은행 및 제 2금융권의 가계대출 연체율 역시 연쇄적으로 급등, 가계와 금융기관의 동반부실로 우리 경제가 만성적 불황구조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9일 한국은행과 금융계에 따르면 미국 발(發) 금융위기로 경기회복 여부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7월 4조769억원, 8월 5조4,372억원에 이어 9월에는 6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9월의 경우 가계대출은 15일까지 보름 만에 무려 3조4,000억원 증가, 상반월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생활이 어려워진 가계를 금융부채가 계속 짓누르는 형국이다.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부실화'의 징조들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의 가계부문 연체율 증가가 대표적 예다. 국민·우리·서울·조흥·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의 경우 하반기 들어 가계대출 연체율이 최고 10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가 높은 신용카드 연체율은 더욱 심각하다. 7월말 현재 LG, 삼성 등 9개 전업카드사의 연체율은 6.79%로 지난 해 말 4.36%, 3월말 5.05%, 6월말 6.29%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 은행겸영카드사의 연체율 역시 지난해 말 7.4%에서 3월말 8.9%, 6월말 9.6%로 급상승하는 추세다. 금융기관에서 돈은 빌려 썼지만 상환능력이 갑자기 떨어져 빚을 제 때 갚지 못하는 가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3∼4년 동안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카드업계에선 연체율 급증으로 하반기 들어 적자로 돌아선 업체도 속출, 가계와 금융기관의 동반부실이 현실화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빚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주가 폭락, 대량실직과 경기부진 등으로 개인의 대출상환 능력이 한계상황에 도달하는 것이다.경기 회복기엔 가계부채가 내수를 촉진, 실물경제 회복에 탄력을 줄 수 있지만 지금 같은 경기침체 상황에선 부실채권의 외형만 키워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할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계부채가 늘어나 부실해지면 소비기반이 무너지고 기업생산이 줄어들고, 금융기관마저 부실해져 총체적인 난국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 연구원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한 가계 부채가 부실로 이어질지 여부는 해외경기의 호전여부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데, 상황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우리경제가 가계부문의 부실화로 장기불황의 늪에 빠질 수도 있는 만큼 특단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현 단계에선 금리인상 등 직접적 충격요법보다는 은행의 가계대출 심사기준 강화 가계여신 한도 축소 및 대손충당금 상향조정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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