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사랑하는 두 친구가 있다. 둘 다 30년 지기이다.유난히 감수성이 민감했던 사춘기 시절과 인생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준비해야만 했던 시간들을 함께 나누면서 보냈던 벗들이다. 매우 수줍음을 탔던 그들이었지만 따뜻한 마음과 곧은 심지를 지니고 있었다.
고교 졸업 후, 한 친구는 치과대학에, 다른 친구는 공대에 들어갔고 나는 대입에 실패,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방황하였다. 음악을 공부하고자 했던 오래전부터의 갈망이 당시 교육자이셨던 부친의 완고한 반대에 부딪혀 이루어지지 못했던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이런 사실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치과대학에 다니던 친구가 하루는 정장을 잘 차려 입고 집으로 찾아와 나의 부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아버님! 평준이가 음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음악가로 성공할 수 있도록 책임지겠습니다"라고 장중한 표정으로 간청을 하였다.
부친은 '실로 당돌하다'고 여기시기도 했겠지만 평소 이 친구에 대해 믿음이 크셨던 탓인지 며칠을 고민하시다가 음악공부를 허락해 주셨다. 치과대학 공부가 무척 힘들고 좀처럼 여유를 낼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자주 나를 찾아와 격려해 주었고 이 후에도 지금까지 즐거울 때나 힘들 때 언제나 함께 하는 벗으로, 든든한 후견인으로 있어 주어 행복하다.
다른 한 친구도 이런 과정 속에서 용기와 힘을 주었다. 대학시절 개인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고 그리 큰 돈은 아니었지만 당시엔 절박했다. 나의 처지를 전해 듣고 그 친구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기꺼이 돈을 마련해 전해주었다.
최근에 부친이 암 선고를 받으시고 갑자기 많은 수술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또 적지 않은 돈을 갖고 달려왔다. 코끝이 찡해왔다. 또한 내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장 적절한 처방을 내려주기도 했다.
두 친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격동의 시기에 정의를 위해 앞서서 싸우기도 했고, 불우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야학운동, 무료학습지도, 봉사활동 등을 했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장애우들을 친한 벗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지금 이들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훌륭히 일하고 있으며 행복한 가정도 꾸리고 있다. 벗들은 오늘도 아름다운 일들을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박평준 한전아츠풀센터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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