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선수 몇 명이 들어온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 무지막지한 최신무기의 실험장이 된 죽음의 땅에서 온 손님들이다. 언제 내가 저들을 아시아의 이웃이라고 단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저들의 땅이 천년 폐허로 되어가는 전쟁을 하나의 뉴스 풍경으로만 대하고 말았던 것 아닌가.동티모르 선수 10여 명이 들어온다. 갖은 압박과 설움과 시련 가운데서 21세기 신생국가로 독립한, 정글에서 아직 전후좌우를 제대로 가릴 만한 계제가 아님에도 아시아경기대회 참가국가가 된 것이다. 얼마나 가슴 뭉클한 일인가. 마침, 동티모르에 유엔평화유지군의 한 역할로 파견되었던 국군 상록수부대원들이 동티모르 응원단으로 나섰다니 흐뭇하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우리에게 가슴 뜨거운 감격은 남북한 선수들이 절대 평화의 뜻을 담은 한반도기 한 깃발 아래 함께 식장에 들어오는 순간 절정을 이룬다.
잔소리 그만 두자. 지난 세월의 분단 고통을 이 광경 하나로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은가.
휴전선 이쪽 저쪽에서 서로 총구멍 맞댄 적대 관계가 얼마나 반역사적인가를 깨칠 만한 귀중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것은 앞으로 올 위대한 시간을 그런 어이없는 분단 모순으로 보낼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남과 북 모두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2년 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장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들어설 때 경기장내 전원 기립박수의 환호를 잊을 수 없고 세계 모든 지역이 함께 축복해준 사실도 잊을 수 없다.
이제 그 축복이 한반도의 한 항구도시에서 극적으로 실현됨으로써 하나의 코리아는 아시아 사람 모두의 염원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과연 녹슨 경의선과 끊긴 동해선이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내고 관통하기 시작했다. 또한 몇 개의 무대공연이 남북한에서 동시 방영되는 대단한 변화에 이르렀다.
아시아경기대회가 한반도에서 개최된다는 사실 자체와 한반도의 질적 변화가 맞닿아 있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37억의 이번 잔치에는 어느 대회 때보다 많은 44개국이 참가했다. 아프가니스탄과 동티모르에 같이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참가함으로써 아시아경기대회가 한층 더 온전한 것이 되었다.
그동안 이 경기대회에는 국가간 갈등, 이념간 충돌, 운영상의 불화들이 자주 노출되었다. 이번 대회는 이러한 아시아의 불가피한 후진성을 극복한 의의가 자못 크다.
1951년 3월 첫 경기대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을 때 겨우 11개국 참가 규모였던 것을 돌이켜 보면 이제야말로 아시아라는 이름에 값하는 대회가 된 것 아닌가(당초 50년에 첫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개최국 인도의 국내사정에 따라 한해 연기됐고 한국은 54년 마닐라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이런 아시아 대축제에 즈음해서 우리 자신의 아시아적 인식을 발전시킬 과제가 있어야겠다.
우리는 너무 미국에 의존하고 서구에 기울어져 살아왔다. 일본의 메이지(明治)시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우리가 경멸할 수록 우리 자신에게 들씌운 서구지상주의의 그림자가 너무 크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와 함께 우리가 아시아에서 친구와 이웃의 범위를 좀더 넓히지 않으면 안된다. 아시아에 진정한 친구를 두지 않는다면, 아시아적 공동이익을 꿈꾸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은 아무도 메울 수 없는 결핍이다.
아니, 아시아는 어제의 아시아가 아니다. 아시아를 자각하고 아시아가 서로 사랑할 때 세계라는 삶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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