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대북 비밀지원 의혹과 관련, 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4,900억원 지원과정에 대한 의혹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고 있다. 당시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현대상선의 경우 현대건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양호하기 때문에 굳이 이 같은 거액의 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없었다는 판단이었다.더욱이 산은이 재경부 금감원 주채권은행(외환은행) 등과 협의도 없이 대출을 집행한 것도 금융 관행상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사용처와 관련해서도 현대상선은 대출직후 현대건설에 1,900억원을 지원, '유동성위기에 따른 지원'이라는 산은 해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자금지원, 불가피했나
산은은 "삼성카드 등 2금융권이 2000년 4∼5월 4,151억원을 회수, 현대상선이 유동성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에 지원은 불가피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상선은 같은해 3월 '왕자의 난(몽구-몽헌 회장간 경영권 분쟁)', 4월 현대투신 자금위기, 5월 현대그룹 유동성위기설 확산 등으로 기업어음(CP) 만기연장이 안돼, 일시적 미스매치(자금수급상 만기불일치)를 겪었던 것은 틀림없다. 이에 따라 5월17일 외환은행이 500억원을 지원한데 이어 18일에는 채권단 협의하에 산은이 1,000억원을 지원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이 같은 지원이후 채권단은 현대상선에 대한 추가지원은 필요없다는 판단이었다"며 "정부와 채권단의 관심은 하루 수백억원씩의 자금부족으로 위험수위 직전까지 갔던 현대건설에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당시 운임수입만 월 4,000억원에 달했다. 또 2000년 4월 현대증권 등이 4,100억원어치 회사채(CP)를 매입해주었고, 5월말 현대전자 지분 매각으로 1,579억원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5월26일 계열사 출자(현대아산·560억원, 현대중공업·1,933억원)를 감안하더라도 추가지원은 필요없다는 것. 특히 5월말 이후 삼성카드가 300억원을 지원하는 등 현대상선 자금상황은 회복국면이있다. 그러나 산은은 채권단과 협의도 없이 6월7일 4,000억원을 담당 이사 전결로, 그것도 신청을 받은 지 이틀만에 집행했다.
■4,900억원 사용처 논란
현대상선은 CP상환(1,740억원) 선박 용선료(1,500억원) 선박건조관련(상환금 590억원) 회사채 상환(170억원) 운영자금(900억원) 등에 4,900억원을 사용, 9월28일 300억원, 10월28일 1,400억원씩 상환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대상선 사업보고서의 계열사간 자금거래 내역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대출직후인 6월8일 현대건설 CP를 1,000억원어치 매입하는 등 13일 400억원, 21일 250억원 등 6월에만 1,900억원 지원했고 8월에 다시 1,300억원어치 CP를 사주었다. 현대상선 관계자도 "4,000억원중 1,000억원은 6월에, 3,000억원은 7∼8월에 만기도래한 어음 상환 등에 사용했다"며 "거래기업에게 불이익이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지만, 국정조사를 하면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산은 지원금 4,900억원은 한나라당 주장처럼 대북 비밀지원에 쓰여졌을 가능성 보다는 현대그룹 차원에서 건설과 아산에 유동성을 지원하는데 변칙 사용됐을 개연성이 높다. 이 경우 정부는 대북 비밀지원 의혹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당시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를 강력히 척결하겠다던 정부 정책과 배치될 뿐 아니라 대북 사업 손실에 따른 특혜성 지원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된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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