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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첫 시집 "거미"/가난찌든 남루한 현실이 詩의 거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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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첫 시집 "거미"/가난찌든 남루한 현실이 詩의 거름으로

입력
2002.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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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성우(31·사진)씨가 '거미'(창작과비평사 발행)를 출간했다. 그의 첫번째 시집이다. 박씨의 시는 가난과 노동의 현장을 더듬는다. 그것은 그가 처한 현실에서부터 출발한다. 부모는 박씨가 다니는 대학의 청소부였다.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에서 공부한 그이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 조퇴를 하고 공장에서 나왔다. 학교 도서관 앞에서 쓰레기 리어카를 끌고 가는 아버지를 만났다. "막둥아, 네가 웬일이냐."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얼른 가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백일장이 끝난 뒤 만난 어머니는 먹고 싶은 게 없느냐고 묻기 바빴다.어쩌면 이 시대에 낯설어 보이는 남루한 현실이 시의 거름이 된다. 잡풀을 뽑는 등에 땀이 송송 꽂힌 어머니, 두꺼비같이 우툴두툴한 손을 가진 아버지, 기름 냄새로 찌든 봉제 공장의 미싱 창고. '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뽑고 있었어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 지탱시키려는 듯/ 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호밋날이 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어머니'에서) '아버지는 지난 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 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두꺼비'에서) '딱, 5분만 자면 피로가 풀릴 것 같아/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 김반장의 시선 피해/ 미싱 창고로 발길을 옮긴다/ 문을 당기니/ 기름냄새 일부가 황급히 나가다 말고/ 소나기에 막힌다'('미싱 창고'에서)

그는 등단작 '거미'로 주목을 받았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한 사내의 죽음과 그 전말이 비춰지는 시다. 사내는 양조장 사택에 관한 원한 때문에 자살했다. 그렇지만 '거미가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 것처럼, 그 사내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았다. 박씨는 자신의 가족과 직장에서 폭력을 발견한다. 그것은 한 사내를 거미처럼 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죽지 않기 위해 시를 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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