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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발견/시간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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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발견/시간이 궁금하다

입력
2002.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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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21일 이탈리아의 실내 장식가 스테파니아 폴리니가 미국 뉴멕시코의 한 동굴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장거리 우주 여행에 대비, 고립 생활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의 지원자였다.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시간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본능적 리듬에 따라 130일간 잠을 자고 생활했다. 정상 생활에서 하루 주기는 24시간이었다. 그러나 동굴 속에서 시간과 무관한 생활을 하자 하루는 25시간으로, 다시 36시간으로 늘었다. 그녀는 동굴에서 지낸 기간이 80일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었다.하지만 24시간이든, 36시간이든 그녀가 일정한 간격으로 생활을 반복한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 '시간의 발견'은 '생체시계'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도 생체시계를 갖고 있어서 해가 뜨고 지는 데서 생기는 빛과 어둠의 주기에 리듬을 맞추는 복잡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시궁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생체시계가 두뇌에 실재로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 서케이디언 리듬연구소 랠프 미슬버거 관장을 비롯해 역사학 신학 심리학 등의 전문가 8명이 쓴 '시간의 발견'은 시간에 대한 인류의 인식 과정을 보여주는 시간의 문화사다.

인류는 언제부터 시간을 인식했을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천문학자 마이클 호스킨 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석기시대부터다. 그는 유럽의 신석기 무덤 수백군데를 조사한 결과 방향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평선의 일출지점을 향한 것도 있었고 일몰 경로를 향한 것도 있었다. 고고학자 오브리 벌 역시 잉글랜드 컴브리아의 원형 석조물이 나침반의 중요 방향과, 하지 동지 때의 일출 일몰 방향을 따라 배열된 사실을 발견했다. 책은 당시 무덤의 축조 시기에 태양의 계절적 주기가 매우 중요했고 신석기 사람들은 태양의 계절적 주기 즉 시간을 중시했다는 주장을 편다.

시간을 의식하면 시계가 등장한다. 기원전 1000년에 이미 이집트인들은 비기계식 물시계를 사용했으며 중세에는 물시계 해시계가 세계 곳곳에서 사용됐다. 중국은 시간 측정 수단을 황제가 독점했기 때문에 시계 발명이 활발하지 못했지만 절대 권력이 없던 유럽은 반대였다. 13세기 유럽에서는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기계식 시계가 발명됐으며 교회의 시계 종소리는 시간을 알리고 죽은 자를 추모하며 적의 침략과 화재의 발생을 알리는 등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기계식 시계는 하루를 균등한 24시간으로 고정시켰다. 시계가 여럿이고 작동 방식도 서로 다르면 혼란이 올 수 있으므로 1370년 파리에는 시계 종소리를 모두 24시간으로 통일하라는 왕명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 균등화의 진정한 원인은 상업의 발달에 있었다. 제조업자가 노동자를 일당으로 고용하면 낮이 짧은 겨울에는 하루 작업 시간이 줄어들지만 시간의 균등화가 이뤄진 뒤로는 시간 단위의 고용이 가능해졌다.

그 뒤 휴대용시계가 보급됐고 일상생활은 점점 더 동시성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영국 우편마차의 호위병들은 우편마차가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1780년대에 각자 시계를 지급받았으며 프랑스 장교들은 1855년 크림전쟁에서 서로 시계를 맞춘 다음 전투를 개시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철도 회사들은 대륙을 횡단하면서 시간대를 식별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계기로 산업 국가들은 1884년 워싱턴에서 본초자오선 회의를 개최, 그리니치천문시(GMT)를 세계 표준시로 확정했다.

책에는 재미있는 실험이 많다. 최근 영국 맨체스터에서 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그렇다. 각자 다른 상황을 주고 자신이 느낀 시간의 흐름을 비교한 것이다. 학생들은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 시험을 칠 때,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출 때, 컴퓨터 게임을 할 때, 운전할 때는 실제보다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 것으로 느꼈다고 대답했다.

반대로 재시험을 볼 때, 일을 할 때, 지루한 영화를 볼 때, 줄을 서서 기다릴 때는 실제보다 시간이 더디게 흐른 것으로 느꼈다는 대답이 나왔다. 인간이 느끼는 시간은 주관적인 측면이 있다는 게 책의 설명이다.

'시간의 발견'은 또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겹겹이 쌓인 지층에서 오랜 시간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제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등 철학자들이 시간의 실체를 알기 위해 고민했다고 들려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물론 '시간이란 바로 이것이다'라는 속시원한 대답은 없다. 대신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시간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 한다. 뚜렷한 주제나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독자들은 주어진 이야기를 하나로 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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