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힘 있는 남성에 대해서는 결코 외모의 약점을 거론하지 않는다. 얼굴이 예쁜 여성의 경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성공의 열쇠는 외모로 돌려지는 것이 현실이다."세계 여성운동의 대모로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Ms.)'를 창간한 글로리아 스타이넘(68)이 27일 한국을 방문,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강연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스타이넘은 한국기자협회의 초청으로 방한, 내달 7일까지 머무르며 28일에는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여성과 평화의 축제'에도 참여한다.
스타이넘은 '여성운동과 언론'을 주제로 강연했으며, '나의 삶과 여성운동'이란 테마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한국에서 장상씨가 총리직에서 낙마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녀 역시 가사와 바깥 일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진 희생자였다"면서 "여자가 나서면 자신을 짓밟을 것이라 생각하는 남성의 사고방식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1956년 스미스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타임스 기자와 자유기고가 등으로 일했다. 63년 르포 기사 '나는 플레이보이클럽 바니였다'에서 술집 여종업원의 비참한 생활을 폭로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여성운동가로 변신했다. 68년 '뉴욕'지에 '흑인 민권운동 이후의 여성해방'등의 칼럼을 썼다.
스타이넘은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양분된 여성 호칭을 통일시켜 미즈(Ms.)라는 혁신적 용어를 창안했고, 72년 미국 최초로 여성이 운영하는 잡지 '미즈'를 창간했다. 창간호에서 자신의 임신중절 사실을 공개하며 '출산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천명했고, 이를 계기로 73년 인공임신중절이 합법화했다. 그는 "당시 불법임신중절은 위험했지만 내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며"여성운동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성별의 장벽에 갇히지 않는 고유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했다.
스타이넘은 15년간 편집장으로 '미즈'를 이끌며 남녀임금차별 폐지, 여성의 의회진출 등의 주장을 확립했고, 뉴욕타임스로 하여금 미즈라는 단어를 수용케 만들었다. 그는 "미즈 창간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지만 인수합병을 통해 언론이 거대기업화하면서 여성의 이미지가 자본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고 있다"며 "언론인이라면 여성의 모습을 정확히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인간으로 여기는 믿음"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83년 잡지계에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명의 여성'에 뽑혔고, 99년 ABC방송의 '20세기를 빛낸 여성 100명'에 선정됐다.
스타이넘은 2000년 66세의 나이에 5년 연하의 남아공 사업가 데이비드 베일과 결혼한 사실에 대해 "내가 미국에서 30년간 싸워왔기 때문에 더 이상 결혼이 인간의 권리를 앗아갈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면서도 "아이를 낳는다면 다시 불평등한 상황이 재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지난해 5월 남편과 함께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에 동영상 축전을 보냈다. 그의 저서 '여성 망명정부에 대한 공상' '일상의 반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등이 번역 출간돼 있다.
/서귀포=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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