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이나 민족주의라는 것도 저절로 우러나거나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의 사적인 동기가 있어서 애국자가 되고 민족주의자로 자처하고 나선다. 일제와의 관계에서 보면 선조때부터 반일감정이 깊었거나 공연히 왜경에게 붙들려 곤욕을 치렀거나 하는 사적인 동기가 있어서 왜경을 미워하고 일본인을 저주하며 일본제국주의의 굴레에서 나라를 독립시켜야겠다는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가다듬게 된다는 것이다.그런데 '백범일지'의 저자 백범 김 구는 뼈저린 사적인 동기가 있어서 애국심을 기르고 항일운동에 투신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로부터는 한치의 혜택도 받지 못했고 스스로 상놈이며 천격임을 인정해서 자신의 호를 백정(白丁)의 백(白)자와 범인(凡人)의 범(凡)자로 지었을 정도로 소외계층에 속했던 사람이다. 이렇듯 백범은 일본인을 미워할 사적인 동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도 황해도 나루터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듯한 혐의가 짙은 변복한 일본군인을 살해했다. 그는 오로지 민족적인 울분이라고 하는 공적인 동기에서 일본군인을 살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백범의 민족주의는 사적인 동기와는 무관하고 공적인 동기인 민족적인 울분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에 더욱 빛난다. 백범은 앞서 밝힌 일본군인 살해사건으로 체포돼 인천서 감옥살이할 때 감옥창문을 닦으면서 '독립된 내 조국 정부청사의 창문을 닦아 보았으면 오죽이나 좋겠느냐'는 순박한 소망을 밝혔던 적이 있다. 이렇듯 순박하고 티없이 맑은 민족주의자를 또 어디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백범일지'를 읽어 내려가노라면 나라 사랑과 참된 민족주의가 무엇인가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백범은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했을 때, 인천 감옥생활 때를 회상하면서 임시정부청사의 수위장을 자청했다.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은 백범을 수위장으로 임명할 수는 없어서 경무국장직에 보임했다고 한다. 백범은 자리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나라를 위한 일이면 무엇이든 사양하지 않고 정성을 쏟고 열을 올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한 1970년대 초에 '백범일지'를 읽었다. 당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나는 유신으로 정국이 얼어붙고 기고와 대외 강연이 봉쇄되면서 갑자기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이 기회에 그동안 못 읽은 책이나 실컷 보자'는 생각으로 '백범일지'를 집어들었다. 백범의 애국심에 큰 감명을 받은 나는 그 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에서 '백범일지'를 읽으라고 권했고 나 스스로 애국심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참된 나라사랑이나 애국심을 알고 싶고 일깨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백범일지'를 한번이 아니라 몇 번이고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장을병 한국정신문화 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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