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동아시아 진출은 서양제국주의의 침략과 달리 착취와 수탈이 목적이 아니라 혁명과 근대정신을 전파하려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다."최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김완섭이 쓴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다. 한국에서 먼저 나온 뒤 일본에서 번역, 출판된 이 책은 내용 자체보다도 책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한·일 양국의 반응이 더욱 눈길을 끈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은 일본의 조선식민지 지배가 침략이 아니라 조선 개혁파의 현명한 선택이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이 근대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주장을 일본에서 듣는 것은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대동아전쟁 긍정론'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일본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한국에서 출판하자마자 명성황후의 후손들로부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됐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이 책을 청소년유해도서로 지정, 청소년에게 판매를 못하도록 했다. 청소년유해도서로 지정되면 서점들이 취급을 꺼리기 때문에 성인들도 책을 구입할 기회가 줄어든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이러한 대응방식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사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국가 기관이 침해할 위험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을지 말지, 그 책을 읽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귀중한 권리에 속한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이러한 대응방식은 일본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본 주요 일간지에는 '한국에서 청소년유해도서로 지정된 충격적인 평론집'이라는 광고가 연일실리고 있다. '처음으로 공평한 입장에서 쓴 일·한의 역사'라는 책 표지의 커다란 문구도 독자의 눈길을 자극한다.
일본의 언론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식민지 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책이 출판되면 곧바로 일본에서 번역,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묻기도 한다.
일본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일본인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생각하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민족국가' 개념을 부정하는 이 책이 일본 독자의 '민족국가'적 '애국심'에 뒷받침돼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책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응이 두 나라의 뒤틀린 역사를 반영하는 것 같아 못내 씁쓸하다.
황선영 일본 도쿄대 비교문학·문화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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