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 비밀 지원설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파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현대상선 등 현대의 8개 계열사들이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5월 대북사업을 하는 현대아산에 1,40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 3월 현대의 '왕자의 난' 이후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던 현대 계열사들이 부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대아산의 증자에 참여한 것이다. 현대상선은 현대아산에 출자한 지 열흘 뒤에 산업은행에서 4,000억원의 긴급자금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바로 이사회를 열어 계열사인 현대건설의 기업어음(CP) 1,300억원 어치를 사들이기로 결의했다.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이 제기한 현대건설의 1억5,000만달러(약 1,800억원) 대북 비밀 지원설과 묘하게도 시기와 액수가 들어 맞는다. 현대측이 산업은행에서 돈이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대북사업 관련 계열사들을 지원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현대에 자금지원을 반대하던 엄낙용 산업은행 총재가 취임 8개월 만에 전격 경질된 것도 의아스럽다. 계열사인 현대아산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던 현대상선의 김충식 사장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도중하차했다. 대북 지원금과 관련한 갈등과 마찰이 느껴지는 대목이다.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는데도 정부는 말이 없다. 대북정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왔던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현대의 문제니 나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발을 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의혹은 현대상선이라는 일개 기업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정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고 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국가차원의 중차대한 문제다. 관련자들은 더 이상 발뺌으로 시간을 벌거나 모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부터 소상하게 사실을 밝혀야 한다. 해외에 체류하며 국회의 소환에 불응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정면 돌파한다는 자세로 임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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