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1년6개월간이나 희대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어린이들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사인(死因)을 놓고 또 다른 미스터리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유골 주변에서 발견된 총탄들
27일 대구 와룡산 유골발견 현장 주변 반경 20m 안에서 권총과 소총 등 다양한 종류의 총기 실탄과 탄두, 탄피 등 10여점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400∼500m 떨어진 곳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었던 점으로 미뤄 이 곳에서 날아온 유탄이거나, 소년들이 주변에서 주워 갖고있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정밀감식을 의뢰했다.
경찰은 이들이 여러 발의 오발사고에 의해 숨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군 당국은 사선의 각도 등을 들어 유탄일 가능성을 반박했다.
여기에다 이날 추가로 발견된 김영규(金榮奎·당시 11·성서초교 3)군의 두개골이 상의 소매부분이 2번 묶여진 체육복 안에 들어있었던 점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유골 발견 전날 걸려온 의문의 전화
문화일보는 25일 오후 6시께 4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편집국에 전화를 걸어 와 "대구 와룡산에 가면 큰 무덤 같은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거길 파보면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전화가 걸려온 이튿날 공교롭게도 유골이 발견됐고 정확히 현장을 짚었다는 점을 중시, 발신자 추적 등을 통해 이 남자를 찾고 있다.
▶조난 조건과는 너무 먼 현장상황
경찰의 '조난과 탈진으로 인한 동사(凍死)' 견해에 대해 가족과 인근 마을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56)씨는 "유골이 발견된 곳은 마을에서 불과 300∼500m 거리로, 주민들도 뒷동산 정도로 여겨 늘 오르내리던 곳"이라며 "실종 이후 경찰은 물론·우리 가족들도 수없이 찾았던 곳"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은 경찰이 "당시에는 깊은 산자락이었다"고 밝힌 것과 달리 10여가구나 되는 서촌마을이 인접해 있었고 바로 앞에는 구마고속도로가 지나가 밤에도 불빛이 환한 곳이다.
최초 신고자인 오무근(吳鵡根·60)씨는 이날도 "유해 위에 큰 돌멩이가 눌려있었고 시신이 서로 포개져 있었던 정황상 타살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사인 규명은 가능할까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감식 등을 토대로 신원을 확인하고 타살여부도 규명할 방침이나 유골에 골절 등 심한 외상흔이 없을 경우 사인규명은 쉽지않을 전망이다.
고려대 황적준(黃迪駿) 의대학장은 "10여년이나 지나면서 피부나 근육 같은 연조직이 이미 소실돼 뼈에 외상 흔적이 없는 경우에는 타살인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는지 밝혀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타살됐다면 범인은 누구
유전자 감식에 의해 타살흔적이 드러나더라도 범인을 밝혀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타살일 경우 원한에 의한 범행 정신병자의 소행 우발적인 범행 등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경찰은 실종 이후 사상 최대규모의 수사력을 동원해 이 같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타살에 대한 재수사를 벌인다고 해서 뚜렷한 새로운 단서가 없는 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400m 아래 마을 있는데 凍死했다니 말이 됩니까"/유족들 발굴현장서 오열
"저 바라! 총알아이가? 우짜노…."
27일 낮 12시30분께 대구 용산동 와룡산 개구리소년 사체발굴 현장.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자리를 지키던 유가족들의 입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발굴 2시간여 만에 유골이 묻혀있던 곳에서 총알 탄두가 나온 것. 발굴작업을 하던 감식요원과 수사진은 작업을 멈췄고, 유가족과 취재진 등의 시선이 탄두로 모아지면서 발굴현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저거 보이소.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파묻힌 게 틀림없다 아인교?" 김종식(金鍾植·당시 10)군의 삼촌 김재규(42)씨는 "아이들이 여기까지 올 이유도 없고, 길을 몰라 여기 있었을 리도 없는데 자연사가 말이 됩니까"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여기서 400m 아래로 가면 10여가구가 모여 살던 마을이 있었고, 성서공단 불빛이 훤히 보이는 데 왜 10살 넘은 애들이 산자락에 웅크리고 있다 죽습니까?"
김영규군의 어머니 최경희(46)씨는 "실종 당일 신고했는데도 바쁘다며 코빼기도 안 보이던 경찰이 이제는 아이들이 얼어죽었다고 몰아 붙이고 있다"며 절규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짝이 맞지 않는 운동화 2개, 멜빵으로 보이는 60㎝ 끈, 뼈 조각 등이 추가로 발견됐다.
/대구=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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