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큰애의 학교 통학버스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 뒷자리에 앉은 후배들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그 표현법이 놀랍도록 기발해,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것이다.학생 A: 글쎄 말이야, 내 몸무게가 A데이에 X㎏였는데 A+2데이에 재 보니 X+5㎏가 된 거야. 어떻게 이틀 사이에 5㎏가 늘 수 있단 말이니?
학생 B: 언니네 체중계가 고장난 건 아니구?
학생 A: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학생 B: 내가 보기엔 그동안 고장나 있다가 이번에 고쳐진 것 같은데?
주변의 학생들 모두 이 대화 때문에 한참동안 킥킥거렸다는데 큰 애는 계속 엄마, 그 아이 너무 기발하지 않아? 글도 아니고 어떻게 진짜 대화에 A데이니 X㎏라는 표현을 하냔 말야. 그런데 그렇게 말하니까 자기 몸무게 밝히지 않고도 얼마동안 얼마가 늘었는지 분명해 지더라. 요즘 애들 정말 너무 재밌어.
자기는 요즘 애들 아닌 것처럼 말하는 큰 애를 보며 새삼, 대화의 기술이랄까, 말하기 테크닉이랄까가 중요해 지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것을 표현해도 어떤 언어에 담아내는가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말도 이 사람이 말하면 영 기분나쁘고, 저 사람이 말하면 괜찮은 경험을 흔히 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정곡을 찌르는 직설법이 필요할 때가 있고 변죽만 울리는 완곡어법을 구사해야 할 때도 있다.
영어에선 인종이나 성별, 직업 등에 대한 편견을 담은 표현을 피해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바꾸는 것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고 한다. 인종(race)이라는 말, 민족(ethnicity)이라는 표현을 권장하며, 흑인(Black)을 공식적으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주부의 영어단어로 배우는 housewife는 미국 매스컴에선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homemaker라는 표현이 훨씬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말에서도 변소, 장님, 보험모집인 등은 화장실, 시각장애인, 생활설계사 등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표현술에 ‘정치적’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것은 정치인들만큼 말 가려가며 조심해야 하는 직업도 드물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최근 정치인들끼리 주고 받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이 단어에서 '정치적’이라는 말을 떼어 내야 옳을 듯 하다.
한 인터넷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며칠 전 열렸던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천용택의원과 한나라당 하순봉의원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이회창이가 대통령 될 줄 알고 자만하지 마. 이회창이가 대통령 되면 내가 이민 갈게” “인간말종...”
정치인 아저씨들, 여고생 수준의 대화술도 아직 못 익히셨나요?
이덕규(자유기고가·)기자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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