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참 힘드네요. 언제 끝날 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젯밤 아버님이 밤잠을 못 주무시고 술을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새벽 2시까지 실랑이를 해야 했답니다.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저희 결혼사진을 보여드렸더니 겨우 술은 잊으시고, '언제결혼했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진을 이제야 보여주냐'고 하십니다. 4시에는 소변을 보시겠다고 해서 다시 일어났고. 월요일 출근길부터 몸이 가라앉을 듯이 무거웠습니다.""밤 11시에 변소동을 치뤘습니다. 저는 어머니 씻기고 남편은 시트 갈고. 아침에는 식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죠. 이빨을 앙 다물고 양 손을 꽉 쥐고 벌벌 떨기까지 하니 도저히 밥을 드시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이 어머니 생신이어서 시누이들이 모두 오는데 모두들 저만 원망하겠지요. 약값과 간식비 등을 보태준다고 조금만 어머니 상태가 안 좋아도 제 탓을 합니다."
한국치매가족회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사연이다. 치매, 이른바 노망(老妄)에 걸린 부모를 돌보는 일은 이제 '사랑의 노동'이 아니라 '24시간 휴식없는 노동'일 뿐이다. '환자에게는 천국, 가족에게는 지옥'이라는 치매가 고령화와 함께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자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치매환자수는 65세 이상 노인의 8.3%에 이르는 28만명. 2000년 7.6%였던 이 숫자는 2020년이면 전체 노인의 9%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 '개호보험'의 실시로 치매환자 케어가 공적 서비스로 제공되는 일본과 달리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가족의 몫이다.
배회, 기억장애, 도둑망상 등이 대표적인 증세인 치매는 돌보는 가족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다. 가장 돌보기 힘든 것은 몸이 건강하면서 치매에 걸린 경우이다. 8년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김모(57)씨는 "말도없이 집을 나가 배회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눈을 뗄 수가 없다. 가족들이 모두 잠이 든 뒤 집을 빠져 나가는 일도 있었다. 새벽에 어머니를 찾아가라는 파출소의 연락을 받고 가족들은 그저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것만을 감사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고 말한다. 똑 같은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거나 도둑으로 의심하기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리기도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치매는 가족 모두를 지치게 하고 서로 부양 의무를 미루다 의가 상하기도 한다. 치매 시어머니 수발에 지칠 대로 지친 며느리가 잠깐 외출하기 위해 배회성향이 있는 시어머니 방에 자물쇠를 채웠다가 그새 찾아온 시누이와 한바탕 싸움을 했다는 사연도 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데 있어서 또 다른 문제점이 '노노(老老) 부양'이다. 현재 치매환자의 대부분은 70∼80대이다. 이들을 돌보는 며느리 딸들은 50∼60대.
이들이 치매환자를 돌보면서 관절염 수면장애 등을 앓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치매가족회 이성희 회장은 "가족은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이 더 힘들기도 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부모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부모가 일부러 자식을 괴롭히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치매부모를 보살핀 경우, 환자가 숨진 후에도 정신적 장애를 겪는다. 10년간 치매아버지를 보살폈던 이모(34)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2년간은 아버지가 계시던 방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중증인 아버지를 돌보느라 결혼까지 포기한 그는 아버지의 기행이 심해지면서 나중에는 끼니때 식사를 챙기는 일 외에는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것. 그는 "아버지를 보내고 나니, 잘 했던 것 보다 못 했던 일만 기억에 남는다"고 후회한다. 현재 그는 복지관에서 치매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치매노인 보호시설 송파주간보호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일하는 고모(68)씨도 마찬가지. 아직도 치매노인들을 대하면 지난 8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거나 도둑맞았다고 생떼를 쓰는 노인들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 모습이었다. 8년 전 발병한 어머니를 위해 2년간 매달려 지냈다. 개인시간을 갖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어머니가 대퇴골 퇴화로 자리에 누우면서 비로소 간병인을 두고 외출을 시작했다. 그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치매노인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감정만 앞섰으나 다른 치매 노인을 대하면서 치매 증세에 대해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주 1회씩 하던 일이 벌써 6년째가 되면서 이제는 치매노인 다루는 일이라면 누구 못지 않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직원들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물어올 정도이다. 그는 "가족끼리 분투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덜 고생스러울 것"이라고 말한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치매환자 28만명 불구 수용능력 2만6,000여명/보호시설 부족 심각
치매환자 가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적절한 비용으로 노인들을 모실 수 있는 시설이다. 치매노인 보호시설은 심신이 지친 가족들의 힘을 덜어줄 뿐 아니라 치매환자에게는 전문적인 케어를 제공한다.
시설 종류로는 낮 동안 보호하는 주간 보호시설, 3개월 이내로 보호하는 단기 보호시설, 그 이상 보호하는 장기 보호시설 등이 있다. 이 시설들의 수용인원을 다 합해도 전체 치매환자(28만명)의 7.6%인 2만6,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식사 배변 등 일상생활을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할 수 없는 중증 환자가 4만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시설 부족과 함께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유료시설의 입소비용이 만만찮아 가계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시설은 비용부담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 요양시설, 정부가 보조하는 실비시설, 유료시설, 노인병원 등으로 나뉜다.
보증금 400만∼500만원에 월 이용료가 40만∼60만원인 실비시설의 경우 입소 대기자가 가장 많지만 전국에 14군데에 지나지 않아 몇 년 이상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나마 경증환자만 받기 때문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중증환자는 값비싼 유료시설로 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유료시설은 보통 월 120만∼150만 원 수준이다.
의료서비스가 추가되는 노인병원은 월 150만∼300만원이며 1인실의 경우 500만원을 넘기도 한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위해 평생 저축해야 한다'거나 '평생세금을 낸 중산층은 정작 나이 들어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김동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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