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긴급 지원한 4,900억원(당시 환율로 4억달러)이 재작년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현대아산을 통해 북한에 건네졌다는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의 주장은 충격적이다. 대북정책과 관련된 돈 거래설은 그동안 한나라당이 국회 등에서 간단없이 제기해 온 단골 메뉴였다. 그 때마다 정부는 터무니없는 날조라며 거액 제공설을 강력히 부인해 왔다.그러나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다르다. 금융감독원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의 증언은 제기된 돈 거래설을 뒷받침해 줄 정도로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돈을 빌려간 현대상선측이 "우리가 쓴 돈이 아니니 정부가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증언에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청와대 별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재경부장관 금감위원장등이 모인 가운데 이 문제가 논의되고, 당시 이기호 수석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면 정부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 기업체에 대한 대출금 회수문제를 국정원의 대북담당 차장과 상의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현대건설도 2000년 5월 동남아에서 1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보냈다고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처럼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데도 정부와 현대상선측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이 돈이 선박 건조용 차입금 상환과 운항경비 지급, 기업어음 만기상환 등에 쓰였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며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행여 이 정부의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혀 온 햇볕정책이 타격을 입을까 진상규명에 소홀함이 있어서도 안 된다. 국민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한나라당이 병풍(兵風)과 정풍(鄭風) 차단을 위해 햇볕정책을 정쟁의 고리로 걸어 흔들고 있다는 안이한 인식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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