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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성으로 수색" 분통/경찰에 비난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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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성으로 수색" 분통/경찰에 비난 쏟아져

입력
2002.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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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들로 추정되는 유골이 실종 11년 만에 발견되면서 경찰의 허술했던 수사와 수색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대구 성서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실종된 후 지금까지 수색에 투입된 경찰은 연인원 32만명. 경찰은 사건발생 직후 형사들은 물론 전의경과 군병력까지 지원받아 6∼7개월간 어린이들이 갔을 것으로 보이는 와룡산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이 곳에 투입된 수색인력만 연인원 7만여명에 이르고 횟수도 500여 차례에 달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당시 도롱뇽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불미골'에 대해 집중 수색했으나 유골이 발견된 반대편 계곡은 육안 수색만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은 경찰이 이날 "어린이들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것과도 모순된다. 그 경우 당연히 시신들이 지상에 노출돼 있을 것이며 아무리 육안 수색이라도 그 많은 인원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키 어렵다.

주민들은 "11년에 걸친 장기수사에도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다 등산객에 의해 유골이 발견된 것은 경찰의 수색이 얼마나 건성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경찰이 엄청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고도 사건을 미궁으로 몰고 간 데는 초동수사의 방향부터 잘못 잡았던 데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당초 경찰은 사건 초기 유괴 납치 가능성보다는 단순가출에 비중을 두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것이라는 소극적 자세로 일관, 수사력 낭비와 수사방향의 혼선을 자초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들도 "사건초기 기초 정황 수집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수사본부만 차려놓고는 중복확인 작업에만 매달려 수사력을 낭비했다"며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적극적 자세 대신 그저 시민의 제보만 기다리는 분위기였다"고 털어 놓았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DNA검사 3주이상 걸려

유전자 검사는 유골에서 미트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실종 어린이 가족들의 혈액에서 추출한 유전자와 비교하게 된다. 세포 유전자를 분석하면 일반적으로 2∼3주 이내 식별이 가능하지만, 유골에서 채취한 미트콘드리아 유전자의 검사는 3주 이상 걸린다.

타살 여부는 국과수 법의학실 전문가들이 두개골의 함몰 또는 뼈의 상태 등으로 검사,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질식사 또는 독극물 등에 의한 타살 여부는 유골만으로 가려내기 쉽지 않다.

/이진희기자

■"와룡산에 개구리 잡으러" 공휴일 아침 5명 집나가/91년 실종서 발견까지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경찰의 대대적인 수색 작전과 시민단체 등의 캠페인으로 이어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건국 이래 대표적인 미스터리 사건의 하나로 꼽혀왔다.

대구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이 실종된 것은 1991년 3월26일 오전8시. 30년 만에 부활된 지방의회 의원선거로 임시 공휴일이었던 이날 어린이들은 "와룡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이후 소식이 끊겼다. 이들이 실종된 뒤 경찰은 단순한 모험성 가출로 판단, 와룡산과 인근 저수지 일대를 수색했다. 그러나 수사가 장기화하고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9월25일 55명의 수사요원으로 정식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국 경찰과 공조수사를 펴기 시작했다. 동원된 경찰병력만도 연인원 32만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TV방송을 통한 캠페인은 물론 2억장의 전단이 뿌려졌다.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뱃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쇄, 수색작업에 동참했다.

부산지역 몇몇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은 순식간에 전국 초·중·고교로 확산됐다. 각계에서 성금이 답지, 현상금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4,200만원까지 치솟았다.

'개구리 잡으러 간 친구들은 어디 있을까'라는 추리소설이 등장했고, '개구리소년'이란 제목의 노래가 제작됐다. 92년에는 '돌아오라 개구리소년'이란 영화가 개봉되기까지 했다.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소형트럭에 플래카드와 아이들의 대형 사진을 걸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찾아 나섰다가 성과가 없자 93년9월 생활고 등으로 직접 자식들을 찾는 작업을 포기하겠다는 '눈물의 선언'을 했다.

실종 5년째인 96년 1월에는 어린이 5명 중 한 명이 자신의 집에 암매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굴착기와 곡괭이 등으로 집안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을 벌였으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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