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남한 정보요원들이 북한의 핵무기 제조 물질의 위치를 포착해냈다.국제사회의 이목을 따돌리면서 10년 이상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변 핵시설은 1994년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핵합의로 동결됐다. 하지만 이후 워싱턴이 지속적으로 핵합의를 엄격히 준수하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높아지면서 영변 핵시설은 가동 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필요하다면 재가동해서 신속히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물질을 더 많이 추출해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미국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최근 이런저런 언급과 미 행정부의 여러 선언에 의거한다면 선제공격을 거론할 수 있겠다.
북한은 '악의 축'의 하나로 여전히 (미국의) 잠재적 공격대상 명단의 윗자리에 올라 있다. 이는 북한이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증거는 수십 년간 없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보유·개발을 추구하고, 독재체제이며, 남한에 위협을 가한다는 것만으로도 공격 요건은 충분하다.
북한에 대한 혐오감은 평양과 여타 지역의 '정권 교체'를 중요한 의제로 생각하는 미 행정부 일각에서 특히 강하다. 김정일(金正日)을 '피그미족'이라고 부른다든가 하는 부시 대통령의 과거 언급들에는 그러한 혐오감이 잘 드러나 있다.
공정하게 말한다면 현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처음 고려한 것은 아니다.
80년대 말 이후 영변 핵시설을 쳐야 한다는 얘기는 주기적으로 있었다. 예를 들어 리처드 펄 전 미 국방부 차관보는 91년 의회 증언에서 공격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유일한 진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81년 오시리크의 이라크 핵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도 성공했는데 영변은 왜 안 되느냐는 식의 얘기다. 남한 국방부 관계자들도 과거에 유사한 협박 발언을 하곤 했다.
(선제공격을) 가장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은 아마도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본 빌 클린턴 행정부 때였을 것이다. 미 국방부는 평양이 적절한 사찰도 받지 않고 원자로에서 핵무기 제조용 물질을 인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바람을 깔아뭉개자 선제공격용 비상플랜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선제공격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가장 명백한 사실은 북한이 보복하리라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미국 분석가들은 선제공격이 한반도에 총체적인 재앙을 촉발한다고 판단했다.
지금이 그 때와 다른 점은 부시 행정부가 평양이 꼬리를 내릴 것으로 보고 도박을 하려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북한은 보복을 해도 (미국이)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존을 택할 것이라는 얘기다. 상대방이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는 공격한다는 위협만으로도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제 미국은 북한보다 훨씬 더 예측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통해 북한이 이미 느끼고 있는 압박감을 가중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예측불가능하게 보임으로써 미 행정부는 워싱턴의 리더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훼손할 뿐 아니라 한·미 동맹관계를 해치고 있다.
북한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 손쉬운 해결책이란 없다. 군사적 방안은 너무도 위험하다. 공작을 통해 (북한) 정권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북한은 고맙게도 저절로 무너질 것 같지도 않다.
워싱턴은 평양을 다루는 데 있어 외교가 가장 덜 나쁜 선택일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선제공격 운운하는 성명 등을 보면 미 행정부는 아직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회피할 수도 없는 이러한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는 듯하다.
조엘 S 위트 미국 국제전략 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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