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프리부르영화제 대상 등 10여개 해외영화제에 부지런히 나들이를 다닌 '낙타(들)'이 '드디어' 개봉한다. "단 한 개의 극장이라도 잡아 국내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박기용 감독의 꿈이 작품 완성 후 1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낙타(들)'은 불륜 남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지만, 선정적이지도 뜨겁지도 않다. 차가운 불륜영화라고 부르면 좋을 이 디지털영화는 아주 담담한 시선으로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오래 기다리셨죠." "아 네. 차가 바뀌셨네요." 두 사람이 말을 조심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다.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이 차 안에서다. 약사인 여자(박명진)와 약국에 드링크제를 먹기 위해 들르던 남자(이대연)는 모두 가정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친해지기 위해, 혹은 살을 섞기 위해 차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인생의 대부분이 그렇듯, 그들은 끝내 목적한 선유도에 가지 못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작은 포구. 두 사람은 회를 먹으며 대학시절과 그보다 더 먼 유년시절을 이야기하고, 노래방에서 키스를 하고, 모텔로 들어갔다. 섹스를 하고 난 뒤 비빔 국수를 시켜 먹는다. 그리고 아침, 두 사람은 다시 해장국을 먹고 서울로 향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한 순간을 택한 이들이지만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다. 굳이 있다면 친구에게서 빌려온 남자의 차가 누군가에 의해 약간 흠집이 난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차 수리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건네고, 남자는 사양한다. 자신의 인생에 누군가를 끌어들인 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마 빌려온 자동차에 난 흠집인지도 모른다. 일상을 사는 우리들은 드라마틱한 순간에도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지 못한다. 그래서 '낙타들'이 아니라 '낙타(들)'이다.
두 사람 사이에 거의 감정적 교류가 없는 것처럼, 디지털로 찍은 화면도 거의 변화가 없다. 대부분 카메라를 고정해 찍은 롱 테이크(무려 10분짜리도 있다)이거나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들고 찍는 핸드헬드이다. 자동차의 움직임과 함께 화면은 흔들리고, 실내로 들어가면 정지한다. 첫 장면에서 두 사람의 뒤통수를 따라가던 관객의 시선은 서울로 돌아오는 차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달라진 것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더 뜸해졌다는 것쯤. 대신 좌회전, 우회전을 알리는 방향지시등 소리만 들릴 뿐이다.
'모텔 선인장'의 박기용 감독의 '사막' 연작 두번째 작품으로 영화배우 이대연씨와 아마추어 연극인 박명진씨의 연기가 보통 사람들처럼 자연스럽다. 27일 코아아트홀 개봉. 18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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