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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04)모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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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04)모라비아

입력
2002.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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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26일 이탈리아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가 83세로 작고했다. 본명이 알베르토 핀케를레인 모라비아는 영어권에서 '이탤리언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네오레알리스모(신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아래서 사회비판 문학으로 태동한 네오레알리스모는 제2차 세계대전 뒤 영화 쪽으로 영역을 넓히며 활짝 개화해, 20세기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예술 사조가 되었다. 모라비아의 소설들 몇몇은 거장(巨匠) 감독의 손을 통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비토리오 데시카의 '두 여자', 장뤽 고다르의 '정오의 유령',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주의자' 같은 작품들이 그 예다.로마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모라비아는 9세에 찾아온 결핵 때문에 그 뒤 10년간을 거의 요양소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학교 바깥에서 작가의 꿈을 키우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22세에 장편 '무관심한 사람들'을 내며 문단에 나왔다. 파시즘 치하의 로마를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하층 부르주아 가족의 사흘을 그린 '무관심한 사람들'은 실존주의적 분위기 속에다 파시즘 비판을 버무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파시즘에 대한 모라비아의 비판적 펜촉은 그가 검열의 눈을 피하기 위해 즐겨 사용한 우화 기법의 피륙을 자주 찢고 튀어나와 정부의 검열관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과감한 성애(性愛) 묘사는 그렇지 않아도 그의 좌파적 수사를 마땅치 않게 여겼던 바티칸을 더욱 격분시켰다. 모라비아의 작품들은 1930년대 이후 정부의 금서 목록과 교회의 금서 목록에 동시에 올랐다. 1941년부터 모라비아는 역시 소설가였던 아내 엘사 모란테와 함께 카프리섬에서 반(半)연금상태에 놓이게 됐고, 연합군이 그를 구출해낸 1944년 이후에야 자유롭게 집필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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