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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야구단/양반·신여성서 머슴까지 한팀이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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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야구단/양반·신여성서 머슴까지 한팀이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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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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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해주신 옛날 이야기는 정말 재미 없었다. 무미건조한 스토리의 나열. 그러나 외할머니는 달랐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상상력을 뒤섞어 이야기를 부풀리고, 조금이라도 지루해 하는 표정이라도 지으면 얼른 재치와 유머를 집어 넣고, '이렇게 돼야 할 텐데' 라며 조마조마해 하면 모른 척 뜸을 들이다 딱 맞는 반전을 준비해 우리를 기쁘게 해주었다. 주인공이라도 된 듯 연기까지 곁들였다.'YMCA야구단'은 바로 그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은 영화다. '옛날(1905년)에 경성(서울)에 처음 YMCA야구단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그 야구라는 것이…'로 시작하는 영화는 처음부터 재미를 위한 모든 재료들을 가득히 준비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했지만, 그것에 부담을 갖거나 집착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야기꾼(감독과 기획자)의 관심은 외할머니처럼 '어떻게 하면 아이들(관객)이 재미있어 할까'였다.

'YMCA야구단'의 무기는 '충돌'이다. 우리 역사에서 1905년은 어떤 시대인가. 일제 침략이 노골화하면서 친일과 민족주의가 대립하고, 서양 문명과 전통 문명이 공존하고, 봉건과 근대화가 뒤섞인 그야말로 '충돌의 시대'였다. 바로 그 충돌이 웃음과 해학과 드라마의 무기가 된다. 역사의식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을사보호조약도, 그에 따른 애국지사의 애통한 자결이라는 민족적 비극조차 코미디로 변주된다.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가. 야구단을 창단한 민정림(김혜수)은 명문가 출신이면서 유학을 통해 신문물을 접한 신여성이고, 야구단의 4번 타자가 되는 이호창(송강호)은 유교 전통에 사로잡힌 '이가서당'의 훈장(신구)의 아들이다. 다른 선수들도 하나같이 극단적인 인물로 구성했다. 강속구 투수 오대현(김주혁)은 일본 유학생으로 '을사50적 암살단'으로 활약하고, 이호창의 친구인 포수 류광태(황정민)는 친일파의 아들이다. 3루수 정병환(김일웅)은 반상철폐를 인정하지 않은 자존심 센 양반인데 반해 1루수 마성환(이대연)은 그의 집 머슴 출신이다. 통감부 산하부대장이자 일본군 야구팀 주장인 노무라는 일본 유학시절 오대현의 라이벌이다.

이들이 가장 서구적 스포츠라는 야구를 놓고 벌이는 갖가지 해프닝, 그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가 100년 전 풍경과 어우러져 우리를 즐겁게 한다. '죽을 死'라며 4번 타자를 거부하다 '선비 士'로 해석하고는 받아들이는 이호창, 상놈이 던진 공을 받을 수 없다는 정병환, 야구는 상놈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아들에게 바둑통을 날리는 아버지. 여기에 스포츠 영화의 단골손님인 아슬아슬한 위기와 드라마틱한 역전,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 그리고 감동적인 화해와 우정과 자존심(애국심)까지.

'YMCA야구단'에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상업 코미디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있다. 그 계획된 허구들은 이야기꾼의 능숙한 솜씨와 짜임새 있는 구성, 송강호라는 탁월한 코믹 배우의 직구가 아닌 '변화구' 스타일의 코믹 연기에 의해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바로 그 정형성(관습)의 총집합 때문에 웃음이 끝나고 나면 헛헛하다. 시대만 독특할 뿐, 당연히 영화적 새로움도 발견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에 맞춘 온갖 상상력으로 가공해 맛을 낸 외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가장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기획영화의 자기 한계일까. 10월3일 개봉. 전체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김현석 감독/"역사의식 부족評 각오… 코믹하게 그려"

김현석(30·사진) 감독은 야구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인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광주가 고향이니 당연히 해태 팀을 응원했고, 김성한(현 기아 감독) 타자를 제일 좋아했다. 지금도 1년에 대여섯 번은 야구장을 찾는다. 그가 말하는 야구의 매력은 순간순간 대결에 집중력이 있기 때문.

각본과 조감독을 맡은 야구심판이 주인공인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98년)과 감독 데뷔작이 'YMCA야구단'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야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희로애락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99년에 출간한 한국야구사에서 한국 최초 야구단에 관한 내용을 읽고 흥미를 느꼈다. 100년 전 신문물을 접한 우리의 증조할아버지들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힘든 시대를 산 그들의 용기와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

코미디를 고집하는 것도 그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 "세상을 따뜻하고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 때(1900년대 초)를 다룬 다른 영화의 비장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피해가고 싶었다. 경쾌하고 코믹하게, 깊이 들어가지 말 것. 때문에 역사의식의 부족은 처음부터 각오했다. 코미디야말로 풀어내기 쉽고, 편하게 전달할 수 있다."

자료라고 해야 한국야구사 한 권이 전부. 그래서 옛날 사진첩과 생활사를 다룬 책들을 참고로 당시 풍경과 인물을 '소신껏' 재현했다. 우리나라에서 시대극을 하기 정말 힘들다는 것도 실감했다. 있을 법한 유형의 인물을 모두 배치한 것은 의도적. 그래서 너무 할리우드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다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상업적인 전략 때문만은 아니다. 코미디란 장르의 규칙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전형적이지 않게 만들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제작석사 과정)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있다. 준비중인 다음 작품 역시 야구가 소재. 선동렬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80년 광주에 내려온 서울의 한 대학교 스카우터가 민주화운동에 휘말려 실종되는 이야기. 물론 코미디이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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