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가 남긴 환경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태풍이 지나간 마을과 논밭은 초토화했으며 모든 재산은 쓰레기로 변했다. 여기에 축산폐수와 공장폐수, 그리고 광산폐수까지 뒤범벅이 되어 또 다른 재앙을 우려하게 되었고, 수인성 전염병이 주민을 위협하고 있다.태풍은 열대성 바다에서 생성된 후, 이동하면서 더운 해수면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점점 강해진다. 매년 30여개의 태풍이 북서태평양에서 생성되지만 이동 과정에서 에너지 부족으로 소멸하거나 세력이 약한 상태에서 한반도에 상륙한다. 그러나 최근 엄청난 비구름과 강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우리를 강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의 바다가 점점 더워져 태풍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실제 1959년의 태풍 '사라' 경우 하루 최대강우량이 300㎜에도 미치지 못했고, 피해도 상륙 지점인 남부지역에 그쳤지만, 1980년 이후 나타난 태풍들은 하루 500㎜가 넘는 폭우를 퍼붓고 내륙 깊숙이 피해를 주었다. 이번에는 반도를 관통한 후 강릉에서 하루 800㎜가 넘는 비를 내렸다.
태풍은 이처럼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 국토는 너무나 허약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 몇십년 동안 우리는 수많은 개발사업을 시행했다. 산을 자르고 들을 깎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의 흐름을 막았다. 그래서 적은 비에도 하천이 범람하고 산사태가 발생한다.
여기에 정부의 치수정책은 낮잠을 자고 있다. 핵심이 되는 다목적댐 건설과 하천 정비는 환경 논리에 밀려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1992년 전남 장흥의 탐진댐 착공 이후 다목적댐 건설은 10년간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천 정비는 퇴적물을 준설하고 제방을 축조하여 수로의 통수량을 증가시켜 준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천 생태계 파괴와 골재 채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치수 사업은 무너진 제방 쌓기로 일관되어 왔다. 그나마 이것도 예산 부족으로 해를 넘기거나 부실 공사로 때우기에 급급했다.
물관리가 잘되는 강한 국토에 약한 태풍이 오면 좋은 환경효과를 준다. 태풍이 주는 환경정화기능 때문이다. 적당한 비가 땅 위의 오물을 씻어주고 산천초목을 푸르고 싱싱하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 반대다. 약한 국토에 강한 태풍이 불어오니 모든 곳이 쑥대밭이고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얼마 전까지 몇천억원에 불과하던 태풍 피해는 1999년 '올가'에서 1조700억원에 이르렀고 이번에는 5조원이 넘었다.
세계 곳곳이 기상이변으로 극심한 가뭄과 홍수를 겪고 있다. 우리에게도 언제 어떤 기상이변이 다가올지 모른다. 지난해 100년만의 가뭄을, 올해 사상 초유의 태풍을 겪은 우리는 물에 강한 국토를 가꾸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환경영향평가를 강화하여 개발사업으로 인한 자연의 물 순환 변화를 예측하고, 적절한 투수(透水)지면과 배수로를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산사태와 침수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경사지와 저지대 개발을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의 도시와 공단, 도로 등도 강우에 취약한 곳을 진단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다목적댐 건설과 하천정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국민의 이해도 필요하다. 가뭄과 홍수보다 더 처참하게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없다. 옥토를 불모지로 바꾸고 땅 위의 모든 것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이 가뭄이요, 홍수다. 야산에 잡목을 키우고 하천바닥의 물벌레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환경을 지킨다는 '환경 모르는 환경논리'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것이 망국적인 환경논리다. 매년 찾아오는 가뭄과 홍수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물부족과 물난리가 없는 국토를 가꾸는 것이 환경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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