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열린 4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는 24일 국제 현안들의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의장 성명'을 채택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의장 성명은 경제 협력, 빈곤 극복 등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루었지만 핵심은 한반도 문제와 테러 문제였다. 회의 기간에도 ASEM은 3차례 정상회의를 통해 '반 테러 협력을 위한 선언' '한반도 평화를 위한 코펜하겐 선언'을 채택했다.
ASEM은 이 시대의 최대 현안인 테러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면서 스스로를 국제사회의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ASEM은 1996년 방콕에서 1차 회의를 하면서 발족할 때만 해도 느슨한 대화체였으나 이제 국제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협력체로 부상하게 됐다. 국제역학의 측면에서 보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아시아, 유럽의 주요국들이 ASEM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 역할 확대를 도모하는 ASEM의 몸짓은 우리 정부에게도 기회였다.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평화 쪽으로 확실하게 이끌기 위해 국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ASEM은 최적의 장(場)이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공언하면서 아직 특사 파견조차 하지 않는 미국에 대해 "진짜로 대화하라"는 말을 ASEM을 통해 대신 한 것이다.
북미 대화를 촉구한 '코펜하겐 선언'이 바로 그것으로, 미국이 대화에 나선다면 한반도 문제는 전쟁의 위기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 동안 국제사회는 한반도 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북한을 지목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 변화와 개방으로 나가고 있다. 서해 교전이 있었고 그런 사태의 재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남북대화 재개, 북일 정상회담, 북한의 신의주 특구 지정 등 일련의 흐름은 북한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변수는 미국뿐이다. 미국을 대북 대화의 틀에 끌어들이는 것은 현 상황에서 우리 외교의 최우선 과제이고, 이를 우회적으로 시도한 것이 ASEM 외교라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의 강력한 변화의지 표명과 북일 정상회담 결과 등에 힘입어 이번 ASEM 외교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 정부의 설득과 국제 여론을 따라 대화 해법에 완벽하게 동의할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코펜하겐=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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