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지난 7월1일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지령형 계획경제에서 유도형 계획경제로의 획기적 변신을 꾀하더니만, 급기야 독자적인 입법·행정·사법권을 지닌 신의주특구 개발계획을 발표하였다. 기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7·1조치의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내부개혁만 가지고는 파탄한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에 역부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오던 차였다. 신의주특구 구상은 북한이 외자유치와 외화획득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하고도 남을 사건이다.특히 '모기장식 개방', 다시 말해 개혁이 동반되지 않는 개방의 한계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선전(深 □) 등 중국 개혁·개방 초기의 경제특구보다 훨씬 '화끈한'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는 특구에 전면적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여기서 획득된 외자와 기술을 본토로 연결시켜 경제부흥을 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요컨대 시장경제 특구와 유도형 계획경제 본토를 접목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제 북한은 그들의 줄기찬 부정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환영하고 격려하여야 한다.
그러나 확고한 개방의지와 파격적인 법, 제도가 경제특구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신의주특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가?
첫째, 무엇보다도 안정적 대외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임동원(林東源)대통령특보는 최근 북한경제정책의 변화가 중국 개혁·개방초기와 매우 유사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일리 있는 평가다. 정경분리형 개혁, 점진주의적 방식, 실천 후 정책변화 등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점도 있다. 중국은 1971년 충격적인 핑퐁외교를 통해 미국과 극적으로 화해하고, 다음 해 일본과 수교하였다. 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에서 국가발전의 새로운 전략으로서 개혁·개방노선이 채택되었을 때 중국의 대서방관계는 매우 안정적인 것이었다. 그 결과 외국인 직접투자보다 차관이 더 큰 기여를 하였다.
반면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물론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개선의 큰 물꼬를 트기는 하였으나, 일방주의의 화신 부시 정권과 타협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일 미일과의 관계개선에 실패하게 되면, 아무리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신의주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힘들 것이다.
둘째, 신의주의 특색을 구체화한 목표를 내걸어야 한다. 21일 발표된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은 이 지역을 '국제적인 금융 무역 상업 공업 첨단과학 오락 관광지구로 발전시키겠다'고 명시했다. 비현실적 목표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너나 할 것 없이 경제특구를 설치, 국제중심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이처럼 다기능을 가진 복합형 특구를 건설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신의주의 '지경학(地經學)'적 입지조건은 주변국의 경제특구에 비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결국 신의주는 당분간 제지, 방직 등 경공업에 기초한 수출산업 육성과 중국과의 자유무역 실현에 현실적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동북아 물류기지로서의 기능은 경의선이 복선 전철화해야 가능할 것이다. 한국기업의 참가는 대중국 수출시 북한산 제품의 무관세혜택이 적용된다면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외국기업에 우호적인 노동시장과 경영·투자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직접 채용 및 해고, 자유로운 임금조정 및 성과급 임금제 등 자본주의적 노무관리가 가능하여야 하며 토지 임대료 및 사용료도 중국에 비해 저렴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금감면과 자유로운 송금 등 투자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열악한 인프라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이 밖에도 시장경제를 충분히 이해하는 행정인력을 대대적으로 양성, 배치하여야 한다.
이처럼 신의주특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방의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어 신뢰를 획득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개성과 금강산에도 신의주와 비슷한 법, 제도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이 대대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북한 경제특구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지호 申志鎬·KDI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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