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23일 공적자금 국정조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포기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지금의 준비 상태로는 대선을 앞두고 대대적 공세를 벼른 '공적자금 비리'에 면죄부만 주게 될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다.이 후보는 이날 고위선거대책회의에서 "통과 의례식 조사를 할 필요가 있는지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준비 부족의 이유는 정부의 자료제출 거부와 민주당의 증인 선정 방해가 핵심이다. 당 국조특위 위원장인 박종근(朴鍾根) 의원은 "모두 70건의 자료를 요청했는데 도착한 것은 5건에 불과하다"며 "TV청문회 전에 제대로 자료를 검토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이 증인 채택을 위한 협상을 늦추는 등 조직적으로 국조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공적 자금 비리 의혹을 분명하게 규명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국조를 포기하고, 다음 정권에서 진상 규명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정치공세의 소재로 계속 활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나라당의 국조 보이콧을 기정사실화하기는 이르다. 상당수 당직자와 이 후보 측근은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이 후보의 발언은 일단 자료 제출 및 증인채택 문제를 쟁점화, 정부와 민주당을 압박하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그래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그때 가서 최종 대응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시한은 10월 4일 국정조사 대상기관 보고 일정으로 보아 이달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주중에 진행될 총무회담 및 한나라당과 정부측의 자료 제출 줄다리기 결과가 국정조사의 좌초 또는 순항을 결정할 전망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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