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23일 개회와 함께 가진 1차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코펜하겐 정치선언'을 채택,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법에 힘을 실었다. '코페하겐 선언'의 골자는 남북간 화해·협력 지지,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촉구, 북미 대화 기대,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 환영 등이다. 이밖에도 제네바 합의 이행 등 한반도 현안이 포괄적으로 들어 있고 그 중심 메시지는 '전쟁 대신 대화와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이 선언을 정치적 수사(修辭)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15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10개국이 개회 당일 채택한 것은 상징성과 영향력을 담보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더욱이 지금은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저울질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 대화를 공언하면서도 여전히 힘의 논리를 포기하지 않는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펜하겐 선언은 한반도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선택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코펜하겐 선언이 부시 행정부의 노선을 전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북한에 대해 '이라크식 해결'을 주장하는 미국 내 강경그룹을 제어하는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대화 진전을 기대한다"는 내용도 북미 대화를 주저하고 있는 미국에 결단을 촉구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1일 암스테르담 동포간담회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조기 추진을 시사하고 22일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를 촉구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여론과 명분을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해결' 쪽으로 확실히 끌어들여 미국이 이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겠다는 일종의 압박형 외교전이라 할 수 있다.
코펜하겐 선언은 북한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2차 남북정상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 촉구를 의미한다. 한반도 주변 상황의 불확실성 때문에 답방을 주저하는 김 위원장에게 불확실성의 제거를 위해 답방하라는 조언을 ASEM이 해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코펜하겐 선언은 미국과 북한에 서로 다른 차원의 얘기를 하면서 사실상 양자간 간극을 좁히는 방안을 제시한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후 분위기가 최고조로 고조됐던 2000년 10월 서울의 3차 ASEM에서 남북대화를 지지하는 서울 선언이 채택됐을 때와는 달리 이번 코펜하겐 선언은 절박함과 구체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펜하겐=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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