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선거 사상 가장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22일 15대 연방하원 총선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민-녹색(적녹) 연정이 재집권에 성공했다.23일 적녹 연정의 승리를 전한 외신 기사의 제목에 빠짐없이 '근소한 차이' '면도날만큼 앞선' 등의 수식어가 등장했을 만큼 개표 과정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한 드라마였다. 개표 초반 출구조사에서 기민·기사 연합이 사민당을 한때 2%까지 앞서자 에드문트 슈토이버 후보는 당원들과 축하행사를 가졌고 슈뢰더 총리는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슈뢰더는 승리의 일성으로 "우리 앞에는 여전히 힘든 일들이 남아있지만 함께 헤쳐나가겠다"고 녹색당과의 협력 관계를 강조했다.
적녹 연합의 승리 요인에는 무엇보다 얼굴마담 격인 '슈뢰더-피셔' 조가 '슈토이버-귀도 베스테벨레(자민당 후보)' 조와의 인물 대결에서 압승을 거둔 점을 들 수 있다.
사민당의 저조한 지지율과 달리 후보 개인 인기도에서 20% 이상의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한 슈뢰더는 총선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미국식 양자 TV 토론에서도 친밀감과 신뢰도에서 상대인 슈토이버를 압도했다. 여기에 환경이라는 대의명분에다 주관있는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굳힌 피셔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최고 인기를 고수했다.
9년 동안 바이에른 주총리를 지내며 경제 발전에 능력을 인정받은 슈토이버 후보는 그러나 실업과 재정적자 등 집권당의 실정을 이용하지 못한 채 8월초 유럽을 휩쓴 대홍수를 휴가지에서 맞는 등 '귀족' 이미지만 부각돼 패배했다. 자민당도 선거전 막판 위르겐 묄레만 부총재가 독일 내 유대인 지도자를 비난한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사민당은 재집권에는 성공했으나 98년 총선에 비해 지지율이 2.4%나 떨어져 3.4%를 더 얻은 기민·기사 연합과 대조를 이뤘다. 선거 후 정국에서 슈뢰더 총리는 지지 하락에 대한 책임 부담과 함께 일대 약진에 성공한 녹색당과 피셔 외무장관의 연정 내 높아진 입지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선거에서 패배한 기민·기사 연합 역시 양당 간 책임론 공방과 슈토이버의 거취 논란이 조기에 불거질 수 있다.
사민당 연정의 승리로 유럽에 거세게 불던 우파로의 정권교체 바람도 한 풀 꺾이게 됐다. 재선에 성공한 슈뢰더 총리는 홍수와 이라크전을 이용해 당선됐다는 비난을 불식하고 당면한 경제난 해결과 함께 이라크 문제를 둘러싼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갈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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