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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날조된 시국사건에 아들 휘말려 特赦기다리다 숙모는 끝내 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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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날조된 시국사건에 아들 휘말려 特赦기다리다 숙모는 끝내 자진

입력
2002.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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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여름 숙모님 빈소에서 상제로 조객을 맞은 일이 있다. 숙모님은 반신불수의 몸으로 감옥에 있는 외아들을 기다리시다가 지쳐 간병인이 외출한 사이 자진하셨다.1980년 초 신군부 세력은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했다. 숙모님의 아들은 작가로 문단의 이목을 끌며 등단했지만 반체제작품 활동으로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다가 조작된 사건의 일원으로 영어의 몸이 됐다. 아들을 면회하고 나오시다 뇌출혈로 반신불수의 몸이 되신 것이다.

젊은 시절 시골장터를 돌며 건어물을 팔아 서울로 대학 보낸 아들이 이적단체와 내통한 간첩단(당시 보도)에 가담한 혐의로 지명수배 되고 체포됐다. 이렇게 참담한 현실을 타향의 외딴 마을에서 가슴 태우며 홀로 겪었다. 더욱이 살던 마을에서 유능한 작가의 어머니로 대접하던 이웃도 돌변하여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아들의 품성으로 그렇게 엄청난 사건에 가담했다는 것은 가당찮다는 신념은 잃지 않으셨다.

숙모님을 뵙던 날은 1982년 8월 15일이었다. 동생(숙모님의 아들)이 광복절특사로 출감한다는 소문을 듣고 아내와 함께 방문했다. 석방된 아들을 기다리는 숙모님에게 "꿩 대신 닭입니다"하고 인사 드리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아들은 오지않고 날이 저물었다.

추석에 다시 뵙겠다는 작별인사를 하자 누워 계신 자리를 마루로 옮겨 달라고 하셨다. 마루에 누우신 숙모님은 쪽문까지 열어 놓으라 하셨다. 쪽문을 통해 우리 내외가 정류장에서 버스 타는 모습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자물쇠가 녹슬어 문을 열 수가 없다고 하니 녹슨 자물쇠를 망치로 부수더라도 열어 놓으라 하셨다.

그 날 이후 열흘, 숙모님의 부음을 들었다. 아, 나의 어리석음. 녹슨 자물쇠를 부수라던 숙모님의 심정을 간파하지 못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 날 저녁 숙모님을 위로해 드리지 못한 죄책감은 내 평생 지울 길이 없다. 어언 20년, 당시 감옥에 있던 아들은 어머니의 신념대로 무죄가 확정되어 대학에서 후진을 지도하고 있다.

출옥한 아들은 어머니의 유지에 따라 화장하기로 하고 묘소를 개장하면서 유골 앞에서 끝없이 오열했다. 숙모님의 불행은 가족사이지만 그 근저에는 우리나라의 일그러진 역사가 있다. 이제 숙모님 묘소는 금수강산에 없다.

내년 식목일에는 고향 가족묘지에 느티나무(밀레니엄 트리) 한 그루 추모식수 해야겠다.

송태형 동화국제상사(주)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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