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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절망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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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절망이민

입력
2002.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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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2월22월 남자 56명과 여자 21명, 그리고 어린이 25명이 이민선 갤릭호를 타고 인천을 떠나 이듬해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미국 이민 100년의 역사가 시작되는 사건이었다. 미국 연방인구통계국에 의하면 한국계 미국인의 수는 107만명 가량이지만, 비합법적 체류자까지 더하면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나게 팽창한 미국의 한인 사회는 지금 다각적으로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들을 벌이고 있다.■ 1960년대까지 미국 이민자는 유학생, 전쟁고아, 국제결혼자 등이었고 1970년대까지도 '생존이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삶의 질을 찾아 떠나는 선진국형 이민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화이트 칼라 출신 이민자가 크게 늘었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절망이민'이라 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절망감에서 비롯된, 새로운 성향의 이민자들이 생겨났다. 직장 퇴출, 부정부패에 대한 환멸, 잘못된 교육제도 등이 원인이다.

■ 하는 일이 잘 안되면 "에이, 이민이나 가야지"라고 말하는 습관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것과 관련이 있겠지만, 소위 '3김 정치'가 우리 정치의 전면에 부상한 이후 "○○○이 대통령 되면 이민 가겠다"는 표현법이 한때 제법 유행했었다. 1980년대 말, 필자가 검찰청을 출입할 때 만났던 경상도 출신의 한 검찰간부는 "DJ(김대중 대통령)가 대통령 되면 이민 가겠다"고 호언하곤 했다.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냐"고 했던 그가 이민 가지 않고 아직 한국에 살고 있음은 물론이다.

■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군사독재에 넌더리가 나서 고국을 떠난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3김씨'중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이민 갔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역시 '절망이민'의 범주에 들 것이다. 엊그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상대당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 이민 가겠다고 큰소리 친 정치인이 3개월 뒤 상대당 후보가 정말로 당선되면 '절망이민'을 떠날지 궁금하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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