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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패트롤]대전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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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패트롤]대전 유성구

입력
2002.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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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락특구"에 포위당한 과학·벤처단지추석 연휴 시작 하루전인 19일 오후 11시 대전 유성구 봉명동. 휘황찬란한 네온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 거리는 비틀거리는 취객들과 호객꾼들로 북적거렸다. 술집 사이 사이에 자리잡은 러브호텔에는 술집 아가씨와 어깨동무를 한 취객들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갔다. 한 룸살롱 마담은 "유성이 값싸고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나 서울이나 전주, 청주에서 총알택시를 타고 와 놀고 가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어둠이 내린 유성 일대는 '관광특구'라기보다는 '향락특구'라는 말이 어울린다.

1994년 국내에서 처음 관광특구로 지정되기 전 유성에는 룸살롱과 단란주점이 4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은 298개로 무려 74배 증가했다. 1년에 37개씩 생겨난 셈이다. 술을 파는 식당도 374개에서 2,775개로 급증했다. 여관도 120개가 밀집해 있다.

봉명동의 주 고객층이 30대 이상이라면 인근의 궁동은 10대와 20대를 겨냥한 유흥업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신세대 향락특구다. 궁동은 과학영재의 산실이라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지역 최대의 국립대인 충남대 사이에 위치한 지역. 학생들은 이 곳을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을 본 따 '압구궁동'이라고 부른다.

해가 지기 무섭게 궁동의 삼겹살집과 소주방, 카페들은 고교생과 대학생들로 가득 찬다. 궁동의 술판은 새벽 4시가 넘도록 이어진다.

비슷한 시간 불과 50m 떨어진 유성구 덕진동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 10여명이 연구용 원자로를 이용한 방사성동위원소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인근의 과학기술원과 전자통신연구원 등에서도 실험실 불을 환히 밝힌 채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는 연구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궁동 바로 옆에는 첨단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주민들의 학력 수준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국내 박사인력의 10%가 근무하는 '박사동네'다. 전혀 궁합이 맞지 않는 '퇴폐향락'과 '과학기술'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꼴이다.

대덕연구단지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민간기업연구소 46곳에 1만6,000여명의 연구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또한 벤처기업도 700여개가 몰려 있어 요즘은 오히려 대덕밸리로 더 많이 불린다. 뿐만 아니라 유성구 일대에는 자치구로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7개의 대학이 밀집해 있다.

전자통신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주변에 유흥업소들만 밀집해 있어 연구 및 교육시설이 향락시설에 포위당한 상태"라며 "연구원 가족은 물론 관광객을 위한 품격 있는 문화공간과 위락시설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디자인 벤처기업 (주)그리고 박상현(34) 사장은 "일부 벤처기업인은 유성의 룸살롱 접대로 회사 영업을 대신하기도 한다"며 "대덕밸리 기업인들에게 유성의 퇴폐향락문화는 경계대상 1호"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봉명동 유흥가와 대덕연구단지 사이에 완충역할을 했던 봉명지구를 대전시가 상업지역으로 개발하면서 러브호텔이 대거 들어설 움직임을 보여 또다시 유성의 향락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시민단체와 충남대 교수협의회 및 총학생회 등은 유성구의 러브호텔 불허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고 서명운동과 거리시위를 계획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충남대 김병욱(金炳旭·63) 교수협의회장은 "유성은 과학과 온천을 잘 접목시켜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온통 먹고 노는 문화로 가득 차있다"라며 "유성의 정체성과 비전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대전=전성우기자 swchun@hk.co.kr

■류덕위 한밭대 교수/"과학·교육·관광 3대요소 살려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기술도시 유성에 더 이상 퇴폐향락문화가 확산되어서는 안됩니다."

올 봄 유성구의 용역을 받아 유성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던 한밭대 류덕위(48·사진·경제학과) 교수는 봉명지구의 러브호텔 신축 허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류 교수는 "OECD 국가의 개발 방향에서 볼 수 있듯이 유성도 인간답게 살고 지속개발이 가능한 발전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유성은 연구단지와 대학, 온천 등의 자원을 지닌 만큼 과학, 교육, 관광의 3대 요소를 잘 접목시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머무르며 소비를 할 수 있는 관광 시설의 확충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미니 디즈니랜드와 워터파크 등을 건설, 인근의 대덕연구단지와 중앙과학관, 엑스포과학공원, 계룡산국립공원 등과 연계한 관광코스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7개의 대학이 몰려 있는 지역의 특징을 살려 대학촌을 건설해 대학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대덕밸리의 연구원들은 대전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교육·문화 여건에 불만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삶의 질을 위한 문화 인프라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류 교수는 "지역개발은 전문가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 장기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뒤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이 난개발을 피하는 해법"이라며 "후손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물려주겠다는 개발 철학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전성우기자

■봉명지구 러브호텔 공방 區 신축불허에 지주들 반발

"법에 따라 건축허가를 신청했는데도 안된다니 어이가 없네요." "유성에 퇴폐적인 러브호텔 집단촌을 만들자니 기가막혀서···."

대전시가 중심상업지구로 개발한 봉명지구 46만1,000㎡(264필지)가 러브호텔 공방에 휩싸였다. 유성구가 올들어 22건의 건축허가 신청 가운데 숙박위락시설 19건에 대해 신규 건축허가를 전면 중단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 됐다. 지금도 향락문화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데 더 이상 팽창은 곤란하다는 게 유성구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토지소유주들은 대전시에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등 즉각 반발했다. 시 행정심판위원회도 6월 유성구의 허가 유보조치가 부당하다고 의결했다.

사정이 이렇자 이병령 유성구청장은 5만여 가구에 편지를 띄워 대전시가 유성을 음란특구로 전락하도록 조장하고 있다고 맞섰다.

광역-기초단체간 갈등으로 비화하자 염홍철(廉弘喆) 시장과 이 구청장이 지난달 말 처음 마주앉아 봉명지구를 문화가 넘치는 건전한 도심으로 개발키로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유성구는 문화관광타운 조성을 위한 개발방안 용역을 의뢰해 내년까지 내놓을 방침이다. 유성구 오세기(吳世基) 도시국장은 "문화거리 조성 등을 위한 학술용역을 연내 발주해 늦어도 1년이내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건축허가 불허 처분을 받은 일부 토지소유주들은 예상대로 9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할 경우 이미 토지를 매입한 소유주들의 반발도 클 것으로 보여 진통이 예상된다.

/대전=최정복기자 cj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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