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心韶), 마음의 풍류. 국악과 전통무용계의 큰 어른 김천흥(金千興·94) 선생의 삶에는 그의 호에 담긴 뜻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기품 있는 풍류가 배어있다. 그는 열 네 살 나던 1922년 이왕직 아악부 2기생으로 입소해 궁중 무악(舞樂)은 물론, 살풀이 승무 등 다양한 춤을 섭렵하고 전수하면서 전통예술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려왔다.심소에게서 풍류를 익힌 제자들이 그의 무악 인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를 마련한다. 25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기념 공연은 심소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돼있는 종묘제례악(1호)과 처용무(39호) 등 후학들의 헌정 무대와 심소가 직접 출연하는 춘앵(春鶯)전과 영산회상(靈山會相) 공연 등으로 꾸며진다.
춘앵전은 봄 버들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도취된 감흥을 담은 독무로,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가 모친을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돗자리를 무대 삼아 작고 섬세한 몸놀림으로 꾀꼬리의 재잘거림을 표현해야 하는 이 춤은 기교만으로는 넘볼 수 없는 어려운 춤으로 꼽힌다. 심소는 "아악부 무동(舞童) 시절 익힌 춤이라 각별한 애정을 느낀다"면서 "몸은 늙었지만 세월이 쌓인 만큼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영산회상 공연에서는 오랜만에 양금(洋琴) 연주를 들려준다. 양금은 전통 현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줄을 철사로 만들어 남성적인 거문고나 가야금과 달리 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심소는 건강 비결을 묻자 "고기 안 먹고, 소식하고, 잠 잘 자는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늘 음악과 춤을 벗하며 나이를 잊고 산다"고 말한다.
그는 공연 외에 연구 활동에도 열심이다. 최근 궁중무용에서 불려지는 노래 38종을 한글로 풀고 옛 악보인 '정간보'와 현대식 오선보로 정리한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창사보(唱詞譜)'를 펴냈다. 제자들은 25일 기념 공연에 이어 이 책의 출판 기념회도 연다.
심소는 최근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잇따르고 있는 것에 대해 "특히 춤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형되고 왜곡되기 쉬운데, 젊은 후학들이 적당히 배워 춤을 추려하지 말고 그 형태와 가락을 원형 그대로 살려 보전하는 데 노력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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