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넘쳐나는 돈을 어떻게 하면 흡수할 수 있을까. 과잉 유동성(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어 집값 폭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분석되면서 통화량 흡수가 금융당국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작년 3·4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인 통화정책이 유지되면서 총유동성(M3)은 작년 한해동안 100조원 이상, 올 1∼7월에 74조원이 새로 풀려 1,095조원(7월)에 달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인다는 입장이지만 총액한도 대출축소, 지급준비율 상향조정, 콜금리 인상 등 유동성 흡수 방안들이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어 고심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일단 26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작년 9·11테러사태 직후 2조원 늘렸던 총액한도대출규모를 다시 축소, 11조6,000억원에서 9조6,000억원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세계 경제 여건상 당장 콜금리를 올리진 못해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통화의 고삐를 죄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시장에 '통화 긴축'의 시그널은 줄 수 있어도 실질적인 유동성 흡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총액한도대출규모 축소 효과는 미미
은행이 한은에서 돈을 빌리는 총액한도대출을 축소하면 시중 자금이 줄어들어 금리가 바로 오르게 된다. 이 경우 한은은 콜금리 목표수준(연 4.25%)을 맞추기 위해 통화안정증권 상환 등을 통해 같은 액수만큼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준다. 이렇게 시중 자금 총량은 줄지 않지만 시중 은행들은 금리(연 2.5%)가 싼 총액한도대출이 줄어드는 만큼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 대출금리를 인상하게 되고, 이는 시중 통화량 팽창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요즘처럼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중기 대출실적과 연동되는 총액한도대출을 줄인다고 해서 은행 대출금리가 크게 올라가기는 힘들 전망이다.
▶지급준비율 상향은 어려워
은행 예금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중앙은행에 예치토록 하는 제도인 지준율을 올리면 금융기관 부담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금리가 오르면서 유동성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지준율은 영국, 호주, 캐나다에서 이미 없애는 등 세계적으로 낮추거나 폐기하는 추세여서 한은이 지준율에 손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설령 지준율을 올린다 해도 콜금리 목표를 유지하려면 추가로 쌓은 지준자금만큼 돈을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별 효과를 볼 수 없다.
▶결국 금리인상뿐
1999년 3·4분기 도입된 콜금리 목표제 하에 통화량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금리 인상밖에 없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환매조건부채권(RP)이나 통안증권 거래 등을 통해 시중 자금을 흡수해도 콜금리 목표수준을 맞추려면 다시 자금을 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주택담보대출의 담보비율을 60%로 억제하는 식의 창구지도도 대출 억제 효과를 가져오지만 주택담보대출 대신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등 대출의 방향만 달라질 뿐 유동성의 양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금리 인상의 효과는 통화량 흡수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금리인상은 현재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유동성만 봐서는 금리를 당장이라도 올려야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전 시기가 11월말∼12월초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장 금리를 올리기도 부담스럽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그러나 금융계 한 관계자는 "과잉 유동성을 오래 방치하다가 뒤늦게 금리를 대폭 올리면 심각한 버블 붕괴 현상이 나타나면서 경기가 꺾인다"며 "한은은 이라크전을 이유로 과잉유동성을 마냥 방치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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